• [천하람이 소리내다] 누적적자 얘기 쏙 빼고…'답정너' 연금 개악

      4월 22일 국회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회가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을 다수 안으로 발표했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조금 더 내고 훨씬 더 받는 국민연금’이라니 터무니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기울어가고 있는 국가의 모든 무게를 미래세대에게 통째로 떠넘기자는 얘기나 다름없다. 미래세대는 기성세대를 부양할 능력이 없다. 부양할 수 있는 인구 자체가 없다.     1970년의 출생아는 100만 명인데, 필자가 태어난 1986년의 출생아는 63만 명이다. 2022년 출생아는 24만 명이고, 2023년 출생아는 약 23만 명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출생아 감소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고, 합계출산율이 0.7명보다 더 떨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지난달 22일 492명의 시민대표단 설문조사에서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은 40%에서 50%로 올리는 ‘더 내고 더 받는’ 1안이 다수(56%)로 선택됐다고 밝혔다. 2안은 ‘더 내고 똑같이 받는 안’(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0%)이다. 1안이 현실화하면 2015년생은 중년에 월급의 35.6%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납부해야 한다. 현 기성세대는 13% 정도다.     필자의 아들이 2016년생이다. 2016년생은 월급의 35.6%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10% 이상을 건강보험료로 내야 할 것이다. 각종 복지지출을 감안하면 소득세도 오를 것이다. 월급의 60~70%를 세금과 보험료 등으로 내야 할 판이다. 자산을 형성하고 자녀를 출산하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소멸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꼴이다.    ━  아들 세대가 아빠 세대 부양 못 해    미래세대의 선택지는 크게 ▶이민 ▶포기 ▶저항이다. 소득이 높아 연금·세금 등 부담이 큰 최상류층은 이민을 시도할 것이다. 일부는 보험료, 세금 내면 남는 것도 없는 데 차라리 적극적 소득 활동을 포기하고 부모 혹은 사회의 도움을 받아 편하게 살자고 할 것이다.   대부분의 2016년생은 저항할 것이다. 월급의 35.6%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는 것은 과도하고, 세대 간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는 문제의식은 아주 쉽게 공유될 것이다. 필자도 정치인이지만,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말고 저항하자는 선동은 가장 무능한 정치인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동일 것이다. 2015년생 이하의 미래세대는 결집할 것이고 저항할 것이다. 세대 간 갈등이 폭발하고, 폭탄은 터질 것이다.      지금의 10·20·30대 모두 안전하지 않다. 63만 명에 이르는 1986년생을 24만 명밖에 되지 않는 2022년생이 부양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인 판단이다. 미래세대의 저항이 본격화되고, 재정도 취약한 초고령 대한민국에서 국민연금이 별 탈 없이 존속할 수 있다는 생각은 무책임한 희망 회로 돌리기다. 공론화위원회는 자료집에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빚의 규모를 명시하지 않았다. 자료집의 기금 고갈 시점은 1안은 2061년, 2안은 2062년으로 1년 차이가 난다. 받는 돈을 확 늘리는데 고갈 시점에 별 차이가 없어 1안 선호가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안(더 내고 똑같이 받는 안)은 향후 70년간 누적적자를 1970조원 줄이지만 1안(더 내고 더 받는 안)은 오히려 702조원 늘린다. 누적적자 증감액은 2700조원가량 차이가 난다. 그런데 시민대표단 자료집에는 누적적자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었다. 1안에 불리한 결정적인 지표가 누락된 것이다.    시민대표단 구성도 문제다. 492명 중 40대 이상이 69%에 달한다. 18~29세는 79명(16%), 30~39세는 74명(15%)이고 18세 미만은 참여하지 않았다. 낼 사람은 젊은층과 미래세대지만 개혁의 결정권은 중장년층이 쥔 구조다. 시민대표단을 추린 방식도 공정하지 않았다. 대표단은 일반 국민 1만 명에게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인상 폭 선호도를 물어 ‘소득 보장’과 ‘재정 안정’ 응답 비율에 따라 구성했다. 소득 보장을 선호한 이들이 1.4배 더 많았다.   한 마디로 ‘답정너(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대답만 해)’ 공론화였다. 이번 시민대표단 조사 결과는 폐기해야 한다. 애초에 1안, 2안만으로 조사한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2안이 1안보다는 낫지만, 2안에 따르더라도 기금이 소진되면 미래세대는 월급의 31.2%를 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역시 납부가 불가능한 규모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랫세대가 윗세대를 부양하는 제도설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  연금 제도 설계 근본적으로 바꿔야    마침 지난 2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국민연금을 ‘신·구연금’으로 분리하자고 제안했다. 미래세대에게 과중한 짐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쌓인 보험료는 구연금 계정으로 분리하고, 개혁 시점부터 신연금은 납부한 보험료와 운용 수익률을 더해 연금을 받는 ‘완전 적립식’으로 운영하는 투트랙 방식이다. KDI 방식을 적용하면 미래세대는 15.5%의 보험료를 부담하면 국민연금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신·구연금 분리 방안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진정한 ‘연금개혁’이다. 미래세대의 등골을 부러뜨리는 ‘연금 개악’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 맞게 세대 간 형평성을 지키는 진정한 연금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래세대에 꿈과 희망을 물려주지는 못할망정 빚과 절망만 물려줘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기성세대가 만든 초저출산, 초고령화 대한민국에서 미래세대는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 것이다. 미래세대는 기성세대를 부양할 수 없다. 폭탄을 떠넘기면 반드시 터진다. 앞세대에서 최소한의 폭탄 해체 작업이라도 해놓아야 뒷세대가 앞세대와 함께 폭발하는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겠나.     천하람 개혁신당 국회의원 당선인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05.01 00:01

  • 中알리·테무 공습 무서운데…국내 플랫폼만 규제, 안방 내준다 [박용후가 소리내다]

    중국의 유통 플랫폼 기업인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의 공격적인 영업으로 국내 유통 시장이 격변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밑지는 장사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맞지 않는 말이다. 밑지며 장사하는 중국 유통 플랫폼 기업이 많아져서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 알테쉬라고 불리는 기업들이 그 첨병이다. 알테쉬는 초저가 물량 공세로 대한민국을 침공하고 있다. C커머스(China-Commerce)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억만장자처럼 쇼핑하라’라는 테무의 슬로건 앞에 국내 소비자의 지갑이 활짝 열렸다. 주문한 물건에 문제가 있으면 그냥 버리면 된다고 말할 정도로 값이 싸기 때문이다. ‘천억 페스타’라는 이름을 건 알리익스프레스의 1000억원 규모 쇼핑 지원금도 화제였다.     C커머스는 쓰나미급이다. 직격탄을 맞은 것은 국내 스마트 소매상이다. 중국에서 물건을 떼어 팔던 소매상들은 알리와 테무의 직접 진출로 고사 위기다. 유통 대기업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마트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입사 15년 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국내 온라인 유통 시장 왕좌에 오른 쿠팡조차도 위기를 느낄 정도다. C커머스 업체는 배송비, 반품 비용 모두 공짜다. 값이 싸고 배송비 부담조차 없으니 국내 기업은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셰셰(谢谢)’다. C커머스를 외면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살펴볼 부분이 있다. 직구와 수입은 명확히 다르다. 직구는 중국 플랫폼에 한국 사람이 접속해 이용하는 형태고 수입은 국내 업자가 국내 기준에 맞도록 수입해서 국내에 유통하는 것이다. 핵심은 직구라는 방식 때문에 역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회당 직구 금액 상한선을 낮추거나 직구 총액 한도를 둘 수도 있다.     ━  미국은 무관세 변경, EU는 법으로 압박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초저가 직구로 길을 만들어 국내 커머스 플랫폼 시장에 엄청난 규모로 진입하는 것이다. 공격적 마케팅으로 고객을 모은 다음 국내 기업들과 손잡고 한국 시장을 공략하는 방식이다. 알리익스프레스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국내 물류창고를 짓는 것도 국내 제품 유통을 위한 것이다. C커머스의 한국 공략이 국내 시장에 메기 효과를 만들지 아니면 생태교란종인 배스 같은 결과를 만들지는 정부와 국내 기업의 대응에 달려있다.    C커머스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살펴봐야 한다. 현재로서는 짝퉁을 파는지 단속하고, 소비자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막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최근 들어 정부가 그들이 수집하는 국내 국민의 데이터가 어찌 쓰이는지 살펴보겠다고 나선 것 정도가 위안거리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EU는 어찌 대처할까? 미국은 무관세 기준을 변경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EU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위한 디지털 서비스 법(DSA)으로 C커머스 기업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모두 자국산업 보호를 위한 조치다.    자국 플랫폼을 갖는 것은 많은 나라의 희망이다. 국내엔 네이버, 카카오, 11번가, SSG 등 토종 플랫폼이 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글로벌 플랫폼에 시장을 내주지 않은 국가다. 그런데 이들을 괴롭히는 건 다름 아닌 자국 정부다. 국내에 있는 여러 가지 기존 법으로도 기업의 잘못을 규제하는 건 어렵지 않다. 세무조사, 검·경의 수사, 유관 정부기관의 압력 등 잘못을 바로잡을 방법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새 법을 만들고 또 만들려고 한다. 규제가 마치 사회악을 바로잡는 것처럼 여긴다. 이런 이면에는 국내 정치의 무지도 한 몫 한다. 국회의원 몇몇과의 자리에서 한 의원이 “미국도 유럽도 거대 플랫폼을 강하게 규제한다. 그래서 우리도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     ━  국내 플랫폼 기업 역차별 해소해야   미국과 유럽이 플랫폼을 규제하는 이유는 한국과 전혀 다르다. 미국은 구글(알파벳), 아마존, 페이스북(메타), 애플 등 4개 기업의 시가총액이 미국 전체 상장 기업 시가총액의 15%에 육박했고 2022년에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28%를 차지했다. 미국 전체 경제의 힘이 네 개 기업에 집중되는 것을 우려하며 2021년 6월 반독점법이 탄생했다. 독점으로 인해 벌어지는 불공정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자국 플랫폼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자국 시장을 지키려고 플랫폼 독점에 대한 법안들이 나온 거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네이버와 카카오의 시가총액은 고점으로 여겨지는 2021년 7월 기준 전체 상장기업의 5% 정도다. 또한 GDP의 7%에도 못 미친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오히려 국내 기업들이 외국 플랫폼 기업과 맞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유통 플랫폼의 핵심은 자금력도 있지만 수많은 고객 정보와 거래 정보다. 초고도화된 디지털 사회에서 데이터의 주권을 누가 갖고 있느냐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식민지였던 시대에 대해서는 토착 왜구니 하며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분개를 하면서 우리가 디지털 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너무나 무관심하다.    이제 다시 한번 질문해야 한다. 글로벌 회사들이 막대한 자금력을 갖고 우리의 토종 플랫폼들과 경쟁할 때 제재나 규제가 쉬운 자국 기업들의 팔만 비틀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할까? 상식을 갖고 있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04.24 00:01

  • 무기·성인물·개인정보 포함 AI 필수규제, 기업에 도움되는 이유 [김명주가 소리내다]

    사진설명 : 챗GPT 등 인공지능(AI)의 기능이 강화되는 가운데 지난달 유럽연합(EU) 의회가 세계 최초로 AI 규제 법안을 의결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기술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예컨대 거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동 시간을 단축한 편리한 자동차는 교통사고를 겪은 사람과 그 가족에겐 평생 지울 수 없는 불행의 출발점이다. 순기능의 효과가 큰 기술일수록 역기능과 부작용도 비례하여 크다. 이런 기술은 ‘비가역적인 전환’을 불러일으킨다. 일단 사회가 해당 기술을 수용하면 나중에 역기능과 부작용이 심각하게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수용하기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계속 발생하는 교통사고 때문에 자동차가 없는 사회로 다시 돌아가자는 제안은 현실적이지 않다.   최근 비가역적인 전환을 일으키고 있는 디지털 신기술이 ‘인공지능(AI)’이다. 하지만 뒷면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과 문제점이 있다. 생성형 AI인 ‘챗GPT’가 세상에 공개되고 두 달 만에 이용자가 1억 명을 넘어가던 2023년 1월, 원조 기술을 보유한 구글의 경영진은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구글은 챗GPT보다 더 강력한 AI 플랫폼을 개발했지만 잠재적 사회적 위험과 윤리적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출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인터뷰 기사는 구글 주주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열흘 만에 구글도 생성형 AI ‘바드’를 전격 공개했다. 그 후로 생성형 AI를 놓고 무한 경쟁에 돌입해 있다. 어느 기업도 생성형 AI가 지닌 잠재적인 위험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은 아니다. 챗GPT를 만든 오픈AI의 샘 올트먼 대표는 지난해 5월 미 의회 청문회에서 “AI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자충수적 발언까지 했다.    AI는 다른 디지털 신기술에 비해 몇 가지 차별성이 있다. 먼저 AI는 자율적이다. 그래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으며,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인간이 통제해 오던 대다수 시스템은 시간이 지날수록 AI에게 위임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것이 대량살상무기(WMD)일 경우 인류 전체가 위험해진다. 그리고 AI는 지능적이다. AI가 내부적으로 어떻게 동작하는지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AI가 내린 판단을 인간이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경우가 점차 많아진다. 딥러닝과 같은 기계학습 기반으로 동작하는 AI는 방대한 데이터 학습 과정을 거친다. 학습데이터 속에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포함되어 있을 경우 AI는 이러한 차별과 편견을 고착화한다. 아울러 학습데이터 속에 포함된 개인 정보와 사생활 정보 역시 얼마든지 AI에 의해 유출될 수 있다.    ━  대량의 합성 출력물로 인간 창작 위축    기존의 ‘예측형’ AI와 달리 최근에 공개된 ‘생성형’ AI는 추가적인 위험을 더 갖는다. AI가 생성한 합성 출력물의 표현이 학습데이터와 유사할 경우 저작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소수의 AI에 의한 합성 출력물 ‘폭발’ 현상은 인간 저작 문화의 다양성을 위축할 것이다. 가짜뉴스에서 보듯이 합성 출력물에 대하여 사실 여부를 육안으로 구분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에 가깝다. 생화학무기, 핵무기, 악성코드, 성인 콘텐트처럼 지금까지 협약이나 법률에 따라 접근이 통제되었던 어두운 지식을 모두 학습한 AI는 이제 누구에게나 제한 없이 지식을 제공할 수도 있다. AI는 일인칭 시점에서 자기 의사 표현을 할 수도 있으며 인간에게 주도적으로 질문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의인화 현상이 심화하고 남용과 중독 현상은 물론 가스라이팅도 가능해진다.     GPT-3을 가지고 2년 5개월 동안이나 윤리적 길들이기 작업을 진행하여 얻은 결과물이 바로 GPT-3.5이다. 이를 기반 모델로 동작하는 생성형 AI가 바로 챗GPT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챗GPT는 공개 당시부터 지금까지, 18세 이상만 사용할 수 있다. 14세 이상은 부모 동의하에 조건부 사용이 가능하다. 치열한 가두리 작업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제한적 사용 결정을 내린 배경에서 우리는 생성형 AI의 잠재적 위험을 발견해야 한다.     AI 규제는 이미 글로벌 현상이다. 올해 3월 13일 유럽연합(EU) 의회는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법(AIA)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10월 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AI에 관한 행정명령을 내렸으며, 미 의회는 AI의 자율성을 규제하는 알고리즘 책임법(AAA)을 논의 중이다. 영국은 지난해 11월 초 28개국 수뇌부를 초청하여 AI 안전성 정상회의를 열어 국제적 논의의 물꼬를 텄다. 다음 달 21~22일엔 ‘AI 서울 정상회의’가 열린다. 따라서 인공지능 규제는 우리가 원한다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우리 기업이 글로벌 AI 서비스를 개시하려면, AI 규제라는 글로벌 진입 장벽을 넘어설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    ━  AI 규제라는 글로벌 진입 장벽 넘어야   우선 AI 규제에 관한 글로벌 논의에 우리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글로벌 규제의 최소한을 가지고 우리도 AI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 이 규제를 통해서 기업들이 불편해하는 ‘불투명성’을 제거할 수 있다. 물론 없었던 규제가 새로 생길 경우 기업에는 규제 준수에 따른 비용과 시간 부담이 추가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규제 준수에 따른 기업 지원 정책을 함께 수립해야 하며, 규제의 국가 간 호환성을 최대한 확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기업이 새로운 규제에 대비하여 준비할 수 있도록 규제 시행에 따른 유예 기간도 명시할 필요가 있다. EU가 AI 법에 대한 시행을 2년에 걸쳐서 준비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AI 규제라는 피할 수 없는 글로벌 흐름 속에서 우리 기업의 추가 부담을 줄이면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다양한 지혜를 모아야 할 상황에 우리는 이미 와있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부 교수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4.04.17 00:01

  • AI, 세계 시총1위도 바꾸는데…한국 미래 망치는 걸림돌 둘 [최재붕이 소리내다]

      생성형 AI(인공지능) 산업 경쟁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규제가 양산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2022년 11월 30일 출시된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챗GPT가 몰고 온 혁명의 바람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출시 15개월 만에 그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한 빅 테크들은 너도나도 생성형 AI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생성형 AI 확산의 또 하나의 축인 반도체 기업들도 AI 반도체 개발에 회사의 사활을 걸고 도전 중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시가총액 변화만 보더라도 생성형 AI가 얼마나 파괴력이 큰지를 실감할 수 있다.       ━  생성형 AI 기업들 시가총액 2경원   2024년 4월 2일 기준 시총 세계 1위 기업은 무려 4264조원을 기록한 마이크로소프트(MS)다. MS는 미리 오픈 AI에 10조원을 투자하고 2023년 모든 소프트웨어(SW)에 챗GPT를 탑재하면서 압도적인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10년간 세계 1위를 공고하게 지켜오던 애플은 생성형 AI 관련 전략도, 인재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세계 2위로 추락했다. 세계 3위는 놀랍게도 생성형 AI 전용 반도체라고 불리는 GPU를 생산하는 엔비디아가 차지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보다도 낮았던 시가 총액은  3053조원까지 치솟았다. 엔비디아의 GPU를 독점 생산하는 TSMC는 아시아 최고기업이 되면서 세계 9위가 되었다. 삼성전자는 이날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며 563조원을 돌파했는데 엔비디아의 GPU 시스템에 들어가는 HBM 수출이 많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어 오랜 정체 기간을 뚫고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시그니아 바이 힐튼 호텔에서 가진 전 세계 미디어와 간담회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5위 알파벳, 6위 아마존, 7위 메타도 생성형 AI 개발에 올인 중이다. 현재 생성형 AI 관련 SW를 개발한다는 기업들(MS, 애플, 알파벳, 아마존, 메타, 테슬라)과 AI 반도체를 개발한다는 기업들(엔비디아, TSMC, 삼성전자, 인텔, 마이크론)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하면 2경원을 훌쩍 넘어가고 있으니 얼마나 자본의 집중도가 높은지를 알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도 치열하다. 보호무역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던 미국은 AI 반도체 제조 기업들에만큼은 아무 눈치 안 보고 엄청난 정부지원금을 쏟아붓고 있다. 중국도 거의 무한대의 자본을 투자하며 AI 반도체 독자 개발에 사활을 거는 모양새다. 누가 봐도 미래 패권은 AI 전쟁이다. 반도체에서 우리에게 뒤처진 일본도 이번만큼은 밀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AI 반도체 제조 생태계에 엄청난 지원을 쏟아붓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정신 바짝 차리고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오픈AI가 텍스트를 동영상으로 변환해주는 인공지능 AI시스템 ‘소라(Sora)'를 활용해 제작한 동영상 지난 2월 공개됐다. AFP=연합뉴스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 사회에 깔린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다. 디지털 대전환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이 두려움을 잘 보여준다. 2010년 창업한 우버는 어느새 200조원이 넘는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기업을 성장시킨 건 소비자의 선택이었다. 여행의 표준은 에어비앤비, 금융의 표준은 모바일 뱅킹이 되었고 방송도 이제는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표준인 시대다. 대한민국 국민 60%가 저녁 7시 이후 유튜브를 보는 시대다. 심지어 국적도 상관하지 않는다. 중국 플랫폼인 알리 익스프레스나 테무의 인기를 봐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우버 불법, 에어비앤비 불법, 플랫폼은 약탈자라는 사회적 관념에 묶여 있다. 두려움이 만든 규제 탓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국민 대다수는 디지털 전환이 두렵고 AI가 두렵다. AI 시대를 반기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규제를 만드는 사람들은 정치적 팬덤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두려움을 자극해 더 강력한 팬덤을 만드는 게 쉽고 권력 유지에 유리하다. 그런데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람들에게 도시 택시사업에 투자할 것인지 아니면 우버나 오픈 AI에 투자할 것인지 결정하라면 어디를 선택할까. 앞서 언급한 거대한 자본의 집중이 보여준 ‘미래 성장 기대치’의 기준은 우리 국민도 결코 다르지 않다. 미래성장 기대치는 아이들 세상을 위한 투자다. 우리 욕심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망쳐서는 안 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  규제가 쇄국의 장벽이 되면 안 돼     사실 산업계만 보면 희망은 넘친다. 생성형 AI SW 분야에서 우리는 미국, 중국과 더불어 세계 3대장 국가로 평가받는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플랫폼 주권을 지켜준 기업들 덕분이다. AI 반도체 제조 기술도 미국, 대만과 더불어 세계 3대 기술 보유 국가로 손꼽힌다. 이들 덕분에 AI 시대를 맞은 지금 우리에겐 미국, 중국을 제외하면 웬만한 선진국도 갖지 못한 아주 큰 기회가 온 셈이다. 그동안 정말 열심히 일한 보통 사람들 덕분에 기적 같은 발전을 우리가 이룬 것이다.      진짜 문제는 두렵기만 한 한국민의 마음, 그리고 그걸 이용해 ‘규제장벽’을 치는 우리 사회의 관성이다. 비판과 규제는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미래 지향적인 준비가 되어야지 쇄국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에 일제강점기가 생각난다면 당신은 구세대다. 지난 20년간 디지털 문명 대전환을 이룬 인류 역사를 보자. 달콤한 성공을 거둔 나라는 미리미리 IT 시대를 준비한 국가들이고, 한때 잘 나가던 독일도, 일본도 디지털 전환에 늦어 쇠락 중이다. AI 시대의 개막은 또 한 번의 기회다. 이번에는 두려움보다 혁신과 도전으로 응전하자. 우리는 지난 50년간 최빈국에서 선진국을 만든 기적 같은 역사를 가진 나라다. 기적을 만든 저력이 있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AI 시대, 미래를 향한 담대한 도전을 시작할 때다.      최재붕 성균관대 부총장·기계공학부 교수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04.10 00:01

  • 왜 흉악범만…수만명 서민 등친 금융사기범, 왜 신상공개 안하나 [김한규가 소리내다]

    살인·마약·성범죄뿐 아니라 규모가 크고 피해자가 많은 금융사기 범죄자의 신상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래픽=김영희 디자이너 범행 수단이 잔인한 범죄나 아동 성폭행과 같이 사회를 공분시키는 범죄가 발생하면 인터넷 댓글 창은 네티즌들의 분노로 가득하다.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댓글은 네티즌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의 강력 범죄자 신상 공개는 2010년부터 제도화되었고, 올해 1월 25일부터 모자와 마스크 없는 범죄자의 최근 얼굴과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머그샷(mug shot)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신상 공개 제도는 일각에서 범죄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목소리가 줄곧 이어졌고, 제도화 과정도 상당히 험난했다.       ━  과거에는 범죄자 인권 보호에 치중         1990년대 이전 만해도 연쇄 살인과 같은 흉악한 범죄가 발생하면 범죄자의 실명, 나이는 물론 그들의 얼굴도 생생히 언론에 공개되었다. 서진룸살롱 조폭 살인 사건, 지존파 살인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1998년 범죄자의 신상에 대한 보도는 그가 공인이라는 이유로 공익성이 확보되는 경우 등이 아니라면 공공성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범죄자의 실명 보도가 어려워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 범죄자의 인권 보호 차원에서 제정된 ‘인권 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 규칙’을 통해 국가가 범죄자들에게 얼굴을 가릴 마스크나 모자까지 제공하면서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라고 해도 국민은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없게 됐다.      상황이 바뀌게 된 것은 2000년대 중반이었다. 수도권에서 특히 여성들을 상대로 한 연쇄 살인 사건이 수십 건 발생하면서 국민은 불안에 떨었고, 사회적 공분은 날로 커져만 갔다. 사회적 안전망이 무너지고 있는 순간 소신 있는 기자들이 나섰다. 2009년 1월 중앙일보가 공익을 위해 연쇄 살인범 강호순의 이름과 얼굴을 보도했다. 다른 언론사들도 시시각각 보도하기 시작했고 여론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범죄예방, 알 권리를 향한 국민의 열망은 2010년 4월 살인, 성폭행과 같은 특정강력범죄 피의자의 신상 공개가 가능하도록 입법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지난해까지 신상이 공개된 강력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는 50명이 넘는다. 강남 납치 살해사건의 경우 공범 5명 신상이 한꺼번에 공개되었고, N번방성착취물 관련하여 6명 신상이 4개월에 걸쳐 공개되었다.     ■  「 신상공개 확대했지만 미흡해   다단계·전세사기도 포함해야   공동체 안전을 위해 불가피   」    그러나 범죄자의 현재 모습을 담은 체포 당시 사진인 머그샷의 경우 대부분 공개되지 않았다. 당사자인 범죄자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신분증 사진 등 과거 사진을 공개할 수밖에 없어 실제 생김새와 거의 달랐다. 지난해 지하철역에서 흉기 난동을 벌여 14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최윤종이나 또래 여대생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정유정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법의 실효성이 무력화되는 것은 곧 법치주의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국회가 강제 촬영이 가능한 머그샷을 도입한 ‘특정 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특별법)을 제정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흉악범 신상공개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공동체 안전망 구축이라는 명백한 공익을 위한 것이다. 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 신림동 성폭행 살인 피의자 최윤종이 지난해 8월 25일 오전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미국의 경우는 진작부터 머그샷이 일반화되었다. 빌 게이츠, 타이거 우즈,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같은 유명인사 머그샷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8월 미국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해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되어 구치소에서 촬영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머그샷도 공개됐다.      ━  신상 공개로 경각심 키울 수 있어    올해부터 시행된 특별법은 머그샷뿐만 아니라 내란ㆍ외환, 폭발물사용, 현주건조물방화치사상, 중상해ㆍ특수상해,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 조직ㆍ마약범죄까지도 신상 대상 범죄로 추가했다. 그리고 기존의 피의자뿐만 아니라 재판을 받는 피고인까지 포함했다. 앞으로는 지난 2022년 5월에 발생한 ‘부산 서면 돌려치기’ 사건 범죄자 경우도 공개대상에 포함된다. 아주 바람직한 입법이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공개대상에 금융 사기와 같은 경제 범죄가 없다는 점이다.     최근 주위를 둘러보면 사기 등 경제 범죄로 피해를 보는 평범한 서민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세 사기, 다단계 사기, 유사 수신, 보이스 피싱, 주가조작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지난해 수도권 일대부터 발생한 전세 사기의 경우 정치권에서 특별법을 제정할 정도로 수많은 서민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서민 다중에 막대한 피해를 준 사기, 횡령, 배임과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자도 신상 공개 대상에 포함하는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특히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박은정 후보의 배우자인 이종근 변호사가 변호해 최근 논란이 된 다단계 사기 피고인 같은 사람도 대상이 돼야 한다. 사기 범죄 피해자는 수만~수십만 명에 이르는 불특정 다수가 되기 쉽고, 이들이 벌어들인 범죄수익은 수백~수천억원에 이른다. 신상공개를 통해 대중에게도 사기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어렵게 도입된 특별법이 입법 취지를 살려 실효성 있게 정착될 수 있도록 관계 기관과 언론이 손을 잡고 노력해주고, 이를 통해 일부 유튜버가 임의로 신상을 공개하여 사적 제재를 가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특별법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범죄 피해자나 유족이 2차 가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김한규 변호사,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04.03 00:01

  • [윤영호가 소리내다]의대 정원 증원과 의료 개혁에 대한 솔로몬의 지혜 필요하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사 간의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의료 위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대통령과 정부가 필수공공의료·지역의료 공백 해소를 위해 추진하는 의대 정원 증원에 의사들은 정부가 과학에 근거한 합리적 의사 결정을 하지 않았다며 전면 재검토를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2000년 겪었던 의료 위기의 대재앙이 예고된다. 이미 2020년,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추진하던 정부를 굴복시켜 승리한 경험이 있는 의사 단체는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며 전면 파업을 강행할 태세다.   정부는 이번에는 결단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의사 면허를 박탈하겠다”고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서로가 상대를 굴복시켜서 다시는 반대를 못 하게 하겠다며 충돌 직전이다. 국민은 누구의 손을 들어 주어야 할 것인가? 마치 솔로몬의 재판을 연상시킨다. 강 대 강의 대립으로 국민의 피해는 명약관화하다. 보건복지부는 상급병원 의료이용에 큰 변동 없다며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나 실상 교수들이 지탱하고 있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위기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의사들과 국민이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포함한 의료 개혁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질병과의 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의료 개혁을 함께 성공시킬 기회다.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하다. 양쪽 모두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국민과 의료 개혁, 그리고 대한민국 미래 의료를 책임질 인재 보호다. 서울대병원 방재승 교수는 “국민이 없으면 의사도 없다”며 처절한 심정으로 중재자로 나섰지만 역부족이다.    ━  전공의와 의대생 등 미래 의료 책임질 인재 보호해야      당시 정부 정책에 맞섰던 전공의와 학생들 입장에서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공백 해소, 전공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은 채 ‘2000명 의대 정원’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와 이를 방관한 기성 의료계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 한쪽의 승리는 의료 개혁의 실패로 귀결된다. 승리하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의료 개혁의 기회를 놓친다면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난번을 교훈 삼아 이번에는 제대로 개혁해야 한다. 정부와 의사들은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모두 대화의 뜻을 밝혀야 한다. 우리의 적은 국민, 정부, 의료계가 아니라 질병이고 국민의 건강을 위한 연합군, 한 팀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과학의 영역, 정책의 영역, 정치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에 의해 과학적 근거가 만들어지면 긴급성과 국민의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사회적 합의라는 정치적 판단에 의해 정책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과학의 영역은 동료 전문가 집단의 검증(peer review)을 통해 인정되어야 비로소 논문이 되고 과학적 근거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주장에 불과하다. 그리고 의학적 근거에도 4가지 수준이 있는데,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은 그 중의 가장 낮은 수준의 근거에 불과하다.     정부가 의대 증원의 근거로 제시한 보고서의 저자들도 인정하듯이 미래 예측의 불확실성과 2019년의 의료 서비스 이용 양상이 유지된다는 다소 거친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제시한 결과를 과학적 검증으로 보완하고 이해 관계자들과의 협상과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의료계가 참여하지 않은 아쉬움이 있다. 의료계는 과학적 검증을 거쳐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며 정부 역시 필수 의료, 의료 공급과 수요에 대한 정책의 영향과 조정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최신 자료로 전문성ㆍ독립성을 갖춘 연구기관에 국가적 역량을 모아 조속히 추계ㆍ검증을 의뢰해 합리적으로 재조정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역점을 둔 바이오헬스 기술 투자로 자가관리를 통해 건강을 증진하면 의료 수요가 줄 것이며, 의사의 생산성을 높인다면 같은 의사 인력에도 의료 공급을 늘릴 수 있어 필요한 의사 인력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첨단바이오헬스산업 육성을 통한 글로벌 신성장동력 창출이라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국민을 위한 의료 개혁의 동반자인 그들을 수가 통제로 인한 무한 경쟁의 시장에 내몰 것인가? 필자를 포함한 의료계 선배들은 낮은 수가 하에서 전공의에게 필수의료에 대한 고통을 부담시킨 잘못을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이제는 국가가 전공의를 피교육자로서의 신분과 보수를 보장해주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 사회적 책무를 할 수 있도록 전공의 월급과 교육 담당 교수 지원방안을 국가가 과감하게 책임지는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를 시행해야 한다. 이미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경쟁국들은 시행하고 있다. 2018년 필자가 시행한 여론조사에 “미래 의료 인력의 전문성과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정부가 전공의들의 수련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에 국민 10명 중 7명은 동의했다.     의료 과이용에 의한 과다 수요로 인해 의료인력 부족 현상과 건강보험 재정 결핍을 유발한 국민의 책임도 있다. 국민도 의료 개혁의 주체로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불편함을 감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에 적극 동참하는 국민을 위한 경제적 인센티브도 함께 도입해야 실효성이 있다. 2018년의 같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건강 민주화를 위해 의료의 과용과 남용을 줄이기 위한 소비자인 환자의 책임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국민 10명 중 9명(89.5%)이 찬성했다.      ━  첫해 의대 증원은 협상과 합의라는 정치적 결단의 영역      의사들은 ‘근거에 기반한 의학’을 누구보다도 중시하기 때문에 정치인과 관료들이 오히려 그들이 이해하는 과학적 방식으로 설득하는 방안이 묘약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장기적 인력 추계가 있더라도 질병과의 전쟁으로 국민이 죽어 가는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 첫해에 2000명부터 시작하자는 결단은 정치의 영역으로 보인다. 그다음 해부터는 상황변화에 따라 재평가와 협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재조정하는 것이 더욱 과학적인 정책 결정이다.    첫해에 시작하는 의료 인력 정원 결정은 정치적 영역일지라도, 10년간 혹은 5년간 필요한 의대 정원 추정은 과학적 영역이고 합리적 재조정은 정책의 영역이므로 정부에 의한 국민, 의료계 등 이해 관계자와의 설득과 협의가 필요하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융합하는 과정이 정치에 의한 정책 결정의 예술이다.   의료계만 승리하면 장기적인 의료개혁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고, 정부만 승리해도 국민과 정부와의 신뢰를 잃어버린, 그리고 필수의료의 자부심을 잃고 좌절한 의사들이 개혁의 주체로 나설 수 없어서, 역시 의료 개혁은 실패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 보호 역시 어려워진다. 의료 개혁의 대전환을 위한 동반자로서 국민, 의료계, 정부 모두가 윈-윈해야 한다. 황희 정승이 “너도 옳고 또 네 말도 옳다”고 한 것은 거짓 없는 진심으로 말하는 이들의 말을 귀담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정책의 실패, 국민은 의료의 과이용으로 인한 수요 급증, 의료계는 의료 개혁의 방관자로서의 책임을 공감하면서도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자.      ━  국민·정부·의료계 협의체에서 2000명 증원 등 재논의해야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할 때 솔로몬의 지혜는 누가 과연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지를 놓고 판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윈-윈은 두 여인 중 한쪽이 아이를 양보하거나 한쪽이 반으로 갈라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여인이 합심해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이다. 심판관인 국민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동반자로서 윈-윈의 장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윤 대통령은 의대 증원 대통령이 아니라 ‘의료 개혁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행정적으로 조정이 가능한 조속한 시일 내 국민을 포함한 의료계와 정부가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경청하고 소통함으로써 건설적인 협의체를 구성해 내년 2000명의 증원 규모를 포함한 의료 개혁의 실행 로드맵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  국민·정부·의료계가 윈-윈 하는 의료 개혁 탄생 기대    지금의 고통과 초조함은 대한민국 의료의 파국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의료 개혁의 탄생을 기다리는 산통이다. 가장 어두울수록 새벽이 멀지 않다. 짙은 어둠에서 벗어나 환한 미소로 국민과 의료계와 정부가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는 탄생의 순간을 기대한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03.28 16:30

  • 한부모 가정 70% 양육비 못 받아…강제 징수 건보공단에 맡겨야 [박성민이 소리내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가 적지 않아 이를 강제 집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배드파더스라는 단체가 있다. 2015년 만들어진 곳으로 양육비를 주지 않은 부모의 신상을 홈페이지에 공개해 논란을 일으켰다. 여기엔 유명 인사들도 있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법적 근거 없이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사적 제재에 해당한다는 비판도 제기됐고, 결국 단체 대표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법정 공방 속에 지난 1월 대법원은 배드파더스 대표의 상고를 기각하고 벌금 100만원에 선고 유예를 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선고가 유예됐지만 이 행위를 유죄로 본 것은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사적 제재가 지나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적 제재가 불필요할 만큼 국가가 양육비 이행 책임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 돈 안줄 때 받을 수단 별로 없어 미지급 부모 신상 공개 논란도 정부의 선지급 제도 도입 필요   」    자녀 안 키우면 양육비 지급 의무   여성가족부가 2021년 내놓은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부모가족이 자녀 양육 시 가장 어려움이 크다고 답변한 항목이 ‘양육비, 교육비 부담’이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지 않는 상대방인 비양육부모로부터 양육비를 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72.1%로 2018년 조사 때의 73.1%와 큰 차이가 없다. 비양육부모란 이혼한 전 배우자나 아이의 생부모 등 미성년 자녀를 직접 양육하지 않는 아빠 또는 엄마를 말한다. 이들에겐 양육비를 지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양육비를 주지 않을 경우 이를 받아내기가 만만치 않다. 비양육부모에게 돈을 보내 달라고 수차례 연락하고 재산을 찾아내고 법원에 강제집행 신청을 하는 과정은 불편하고 시간과 돈이 든다. 또 그렇게 전 배우자나 아이의 생부(또는 생모)와 마주하는 것이 큰 고통이 되기도 한다.   우리 법은 양육비를 받을 권리를 단순히 양육부모의 개인적 권리로 보지 않는다. 양육비는 아동이 비양육부모로부터 양육받을 법익을 최소한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비양육부모가 인간으로서 도리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결단이기도 하다. 아동이 자신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양육부모에게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그리고 지난 15년 넘게 양육비 이행 확보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양육비 받기가 어렵고 많은 양육부모들이 양육비 받기를 포기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국회엔 양육비 지급 이행 확보를 위한 법안 20여 개가 발의돼 있고, 이 중 8개는 양육비 선지급 제도 도입을 담고 있다. 양육비 미지급 시 정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양육비 채무자로부터 회수하는 제도다. 여야는 모두 지난 대선에서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이번 총선에서도 또 동일한 공약을 발표했다. 정부는 최근에 있었던 민생토론회 등에서 양육비 선지급 제도를 조속히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양육비 긴급지원제도, 회수율 낮아   그런데 이 제도가 도입되지 못한 이유가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015년부터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급박한 상황에 몰렸지만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한부모 가정을 위해 아동 1인당 20만원에 최장 12개월까지 정부가 먼저 지원을 하고 나중에 양육비 채무자에 받아내는 제도다. 그런데 회수율이 15%에 불과하다. 받지 못한 돈은 국가의 몫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양육비 선지급 제도가 전면 도입되면 재정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양육비 선지급 제도 도입 시 추가 재정 부담이 매년 766억원 정도에 이를 것이라고 추계했다.   양육비 선지급 제도를 도입하려면 실효성 있는 양육비 징수 방안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양육부모가 제때 양육비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양육비 징수가 늦어지면 국가가 선지급하고 구상할 수 있어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1일 미국과 호주 사례를 참조하여, ‘양육비이행관리원’의 권한 확대를 통한 양육비 강제 징수 방안을 제안했다.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금융정보 조회 권한을 관리원에 부여하고, 법원 절차 없이 채무자 직장에 압류를 통보하고 징수하여 양육부모에게 전달하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한국엔 이미 양육비를 징수할 수 있는 인프라가 존재한다. 양육부모나 국가가 양육비 징수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위탁하고 건강보험료와 함께 양육비를 징수할 수 있다고 본다. 건보공단은 이미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른 징수 업무 등을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다. 건보공단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매달 건강보험료를 고지한다. 의료보험 혜택처럼 양육비도 매달 지급되어야 한다.   직장가입자는 매달 월급에서 원천 공제하는 방식으로 건강보험료를 납부한다. 마찬가지로 직장가입자인 양육비 채무자의 월급에서 양육비를 원천 공제할 수 있다. 건강보험료 체납처분 대상자가 되면 소유한 동산, 부동산에 대한 압류, 매각(공매) 절차가 진행된다. 양육비 체납 시에도 그렇게 집행할 수 있다.   건보공단이 양육비를 징수 업무를 위탁 수행한다면 올해 2월 법 개정으로 독립기관이 되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양육지원이나 양육비 집행권 확보를 위한 법률지원, 양육비 채무자 주소, 근무지 등 조사 지원 등에 집중할 수 있다.   아동이 비양육부모로부터 양육 받을 법익을 최소한이나마 실현하고 비양육부모가 인간으로서 도리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면, 양육부모가 양육비를 받기 위해 드는 시간과 돈, 비용이 충분히 적어져야 한다. 여야 모두 이번 총선에서 내세운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으려면 이제는 실효성 있는 양육비 징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성민 변호사·법학 박사     

    2024.03.27 00:01

  • 일용직 노동자 호소…중처법 강화, 일할 기회 없어질 수 있어요 [이두수가 소리내다]

    앞보다는 뒷모습이 그이 본 모습일지 모른다. 겉모습에 너무 휘둘리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우리 반장처럼... 그림=이두수 4.10 총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를 정치의 꽃이라 하기도 하고 민주주의 축제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광고 카피에 불과한 것 같다. 각 당의 공천 갈등을 바라보며 우리 사회가 정말 민주화되긴 한 것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언제나 국민이 답이다’ ‘국민이 옳다’라며 국민을 주인으로 추켜세우지만, 정말 그럴까.    금리 인상과 부동산 불경기로 올해만 건설업체가 844곳이나 폐업 신고를 했다고 한다. 수많은 관련 업체의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고 여기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또 얼마나 피눈물을 흘릴까. 반도체 생산 주도권도 주변국에 빼앗기고, 제조업은 장기 불황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 이슈에는 어디에도 국가의 미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사회도 많이 바뀌었다. 소비에 있어서도 기능이나 성능을 중시하는 기술 우선 시대에서 디자인이 더 중시되고 있고, 요즘엔 이미지에 따른 사회적으로 의미가 부여된 ‘기호가치’가 더 중시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 사회는 팩트보다는 이미지만 넘쳐나는 시대, 즉 시뮬라시옹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는 현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하이퍼리얼리티(시뮬라크르)에 포위되어버린 현대사회의 존재론적 조건에 직면해 있다.     겉만 번지르르해지는 세상이다. 이미 걸프전 이후 전쟁도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의 전쟁의 실상은 더 참혹해지겠지만 화면에 보이는 모습은 불꽃놀이처럼 예쁘게 보일 것이다. 정치나 노동의 현실은 녹록지 않음에도 내용은 무시되거나 가려지고 겉 표면만 아름다운 말로 예쁘게 치장될 것이다.   영남 지역 50여개 경제단체가 지난 14일 부산 벡스코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그럴싸한 이름만 떠돌지 알맹이가 없다. 겉모습에만 치중하지 본질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일용직이라는 말을 한자어로 쓰면 괜찮은 말로 들리지만 한국말로 하면 ‘날품팔이’라는 뜻이다. 건설노동자는 어느 한 기업에 소속된 회사원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일하고 일당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말 그대로 그 때 그때 노동력만 제공하고 이에 대한 비용을 받을 뿐이다. 실제 대한민국의 160만 건설노동자는 모두 날품팔이 노동자다.     노동력의 유연성이란 아름다운 말 속에는 노동의 가치가 들어 있지 않다. 근로자의 사기 진작과 노동 전문화를 위해서는 고용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일용직은 노동력의 유연성이 용이하지만 전문성은 기대할 수 없다. 통상 아파트 건설에서 청소와 할석을 직영으로 운영하는데 완공까지는 1년 반 정도 업무를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1년이 되기 전 회사에선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1년이 되기 전 다른 곳으로 돌린다.     피고용자 입장에서는 아주 기분 나쁜 일이며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전문가 양성 측면에서 봐도 좋은 제도는 아니다. 피고용자를 회사의 자산으로 여기고 전문가로 양성하려는 노력 없으면 제품의 질은 떨어지고 사고는 더 늘어난다.   생각해보자.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가는 의사지만, 사람이 사는 건축물을 다루는 전문가는 건설노동자다. 인간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곳이 육체라면, 인간이 깃들어 사는 곳이 건축물이다. 이렇게 보면 건설노동자의 입장을 그렇게 허투루 볼 상황은 아니다.   ■  「 현장의 안전 의식 고양이 중요 사측, 노동자를 자산으로 여겨야   해외인력 수입, 국가적 전략 필요      」    지난달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을 5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 시행할지 유예해야 할지에 대한 갈등이 있었다. 이미 중대형 건설현장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지만 건설현장에서의 안전사고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보고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50인 이하 사업장에서도 시행할 필요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법으로 규제를 가하면 사고가 준다고 하는 가설이 어떻게 채택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것은 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원래 산업현장에는 그동안 안전·보건에 관한 강한 규제법령이 있었지만 재해가 계속되자, 기업에 안전 보건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개인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를 처벌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권을 확보하자는 것이 법의 제정 이유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자료=고용노동부]   그러나 규제와 처벌에 의해서만이 인간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행동과학이론은 현대에 들어 설득력이 떨어졌다. 오히려 많은 규제와 처벌은 사람들의 의욕만 상실하게 하여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일하는 당사자에겐 아무런 제재가 없이 사용자에게만 책임을 묻는다고 사고가 줄어들 수 있을까. 이렇게 되면 사용자는 관리 비용의 증가로 될 수 있는 한 신규 채용을 꺼릴 것이고 새로운 고용 창출은 갈수록 희박해질 것이다. 현장 근로자들의 안전의식 고양을 위한 대책 없이 규제만 강화되면 노동자는 안전사고 이전에 일할 기회마저 박탈당할 것이다.   요즘 의대 증원 문제로 정부와 의사협회가 강 대 강 대립을 하며 국민만 불안에 떨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도 올해 필요 노동력이 17만 명이나 부족하다고 한다. 업계에선 이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더 많이 데려오기 위해 정부기관을 압박하고 있다.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어떻게 교육하고 적절히 배치할지에 대한 구체안이 먼저 있어야 한다. 이제는 인권이 강화되어 외국인이라고 값싼 노동비를 줄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외국인 인력 활용에 대한 세밀한 국가적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 인력은 비용이 싸다고 해서 대충 수입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절차탁마라는 이 아름다운 말은 원래 노동용어였다. 지금은 학문이나 인격을 수양해 가는 사람을 격려하는 상찬의 말이지만, 하나의 옥을 만들기 위해서는 돌을 자르고, 깎고, 쪼고, 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말이다. 예쁜 옥을 얻기 위해서는 먼지 나고, 더럽고, 위험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자기 수양과 연마는 하지 않고 그저 예쁜 말만 난무하는 사회. 이를 정치용어로 포퓰리즘이라고 한다.    이두수 작가·건설노동자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4.03.20 00:05

  • 걸그룹은 연애도 허락받아야 하나…극성팬덤에 기댄 K팝 민낯 [박가분이 소리내다]

    카리나의 열애가 보도되자 여기에 실망한 팬들이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 앞에서 트럭시위를 했고 카리나는 사과까지 했다. 외신도 이를 보도했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지난달 27일 4세대 인기 걸그룹인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와 배우 이재욱과의 열애 기사가 나왔다. 보도 후 양측 모두 열애를 인정하자 일부 팬들은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SNS에서는 ‘카리나 블루(우울감)’를 호소하는 글이 잇달아 올라왔고, 일각에서는 “그룹의 리더인데 신중하지 못했다” “데뷔한 지 3년이 막 지났는데 벌써 열애설인가” 등 아쉽다는 반응이 올라왔다.     팬들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중국 팬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카리나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으로 ‘팬들을 배신했다’며 카리나의 사과를 요구하는 트럭시위를 벌였고, 이어서 일부 한국 팬도 열애설 논란에 대한 당사자의 침묵을 질타하는 내용의 트럭시위를 벌였다.     시위 직후 카리나는 3월 5일 인스타그램에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K팝의 인지도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만큼 논란은 BBC와 CNN 등 외신에도 보도됐다. 동아시아권 팬덤 문화가 생경한 서구권 외신은 ‘K팝 스타는 연애도 허락받아야 하는가’라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논조로 이번 논란을 보도했다.   과거 1~3세대 아이돌 그룹에서도 심심찮게 열애설이 터져 나왔지만 ‘트럭시위급’의 논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존중 의식이 높아진 지금 이 시점에 카리나 열애 보도가 이토록 격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당황스럽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배경이 있다.   카리나의 교제 소식에 허탈감을 보인 팬들이 내비치는 생각은 ‘시기상조’론이다. ‘한창 성장해야 할 걸그룹이 첫 정규 앨범 출시와 월드 투어를 앞두고 논란을 터뜨린 것’에 아쉬움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카리나가 소속된 에스파는 걸그룹 최다 초동(첫주) 판매 기록(169만 장)을 갖고 있다. 그런데 4세대 걸그룹 경쟁이 격화되면서   다른 그룹에 밀려날 것이라는 위기 의식도 작동했다. 중대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열애설 보도에 1주일 늦게 반응했다는 점도 팬들의 주된 질타 지점이었다.     여기서 엿볼 수 있는 건 현재의 아이돌 팬덤 문화가 단순히 ‘자기만족적 소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돌 팬들은 소속사 못지 않게 음원 성적, 앨범 판매량, 해외 흥행 등의 ‘실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앨범을 수십~수백장씩 사고 각종 굿즈를 구매한다. 차트 순위를 올리기 위해 음원 사이트나 유튜브에서 신곡을 계속 스트리밍한다. 이번 열애 사건에 대한 팬들의 반발은 중요 시즌을 앞두고 스캔들을 일으킨 선수를 질타하는 스포츠 팬덤에 비견될 수 있다.     중앙일보 유료화서비스 ‘더중앙플러스’의 기획 시리즈인 ‘걸그룹, 여덕을 홀리다’가 지적했듯, 아이돌 팬덤은 여성이 주도한지 오래다. 과거 오빠부대와 달리 이제 걸그룹도 주된 응원의 대상이다. 페미니즘의 성장과도 무관치 않다. 이들의 팬심에는 단순한 유사 연애감정을 넘어 응원하는 아이돌의 성공신화를 소비하고 싶다는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블랙핑크가 보여주었듯 K팝 그룹의 성공은 세계적 수준으로 확대됐다.   따라서 이들의 눈에 카리나의 열애 보도는 단순한 ‘사생활’ 문제가 아니라, 함께 감동적인 성공신화를 써 내려가고자 하는 공동의 환상을 무너뜨린 사건으로 비춰진 것이다. 상업적 성공과 자기계발에 대한 강박이 만연한 한국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아이돌 팬덤이 갖는 경쟁 심리는 남성 팬들이 많은 확률형 아이템 게임(가챠 게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게이머들은 매출 순위라든지, 인기 캐릭터의 과금 실적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게임에서 내가 좋아하는 미소녀와 내밀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게 필수이며, 이것이 게임산업의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았다. ‘과금러’ 역시 게임산업을 지탱하는 핵심 소비자로 인식된다.     아이돌 산업에서도 동경하는 스타의 메시지를 1대1 채팅방으로 수신하고 답장을 보낼 수 있는 구독형 메시지 서비스가 확산됐다. 팬사인회에 응모하기 위해 앨범을 대량 구매하기도 한다. 스타와 팬 간의 소통에 과금적 요소가 강화된 셈이다. 이렇다 보니 ‘찐팬’을 자부하는 팬덤 사이에는 일종의 ‘주주의식’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나 가수도 누군가에게 연애 감정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자유로운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개별적 환상에 대한 몰입을 지탱하기 위해서라도 표면적으로 ‘성장’과 같은 ‘공동의 대의’를 지향한다는 식의 중립적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일부 카리나·에스파 팬들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그런 공식 설정의 붕괴, 게임에 비유하면 일종의 ‘캐릭터 붕괴’였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K팝 산업의 급속한 성장은 과몰입 없이는 불가능하다. 제한된 내수시장 탓에 소수 열성 팬덤의 구매력에 의지하게 됐다. 그럼에도 사생활 논란으로 상처받는 ‘실존하는 개인’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거대한 문화산업이어도 ‘자유로운 개인’을 존중해야 더욱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이번 사태는 급속한 성장을 한 K팝 산업에 물음을 던진다. 게임이나 영화 프롤로그를 보면 ‘실제 일어난 일에 영감을 얻었을 뿐 기본적으로 허구의 창작물’이라는 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 K팝 산업에서도 가수가 상징하는 캐릭터와 살아 숨 쉬는 개인을 분리하는 ‘메타 인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박가분 작가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걸그룹 이젠 이모팬이 키운다, 여덕의 진화 요즘 소녀들, 더 이상 ‘오빠’ 찾지 않는다 걸그룹 하나 만들기, 30억 든다        

    2024.03.13 00:05

  • '파묘'가 좌파영화?…'건국전쟁' 감독의 자승자박 논리 [노정태가 소리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조명한 영화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이 ‘파묘’를 좌파 영화로 비판해 논란이 됐다. 그래픽=김영희 기자 장재현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전작인 ‘사바하’ ‘검은 사제들’ 뿐 아니라 검은 사제들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단편 ‘12번째 보조사제’까지 극장에서 본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파묘’를 기다렸다. 오컬트 미스터리라는 비인기 장르에 천착해 온 그가 한국의 풍수를 호러와 어떻게 연결 지었을지 궁금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 ‘MZ 무당’ 화림(김고은)의 대살굿 장면 후 물 흐르듯 전개되는 전반부까지는 참 좋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제가 한반도에 박은 쇠말뚝’이라는 고리타분한 소재에, 일본 괴물을 때려잡는 전개로 흘러가는 건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내놓은 한 줄 평에 십분 동의한다. “허리가 끊겨 양분된 후 힘 못 쓰는 이야기. 편의적 보이스오버로 시각적 상상력을 대체한 맥없는 클라이맥스.”    스포일링이 되지 않는 선에서 문제적 요소들을 언급해 보자. ‘파묘’의 후반부는 백두대간의 정기를 끊기 위해 일제가 쇠말뚝을 박았다는 괴담에 바탕을 두고 있다. 1990년대 정부 차원에서 쇠말뚝 뽑기를 홍보·지원할 정도로 대중적 관심을 끌었지만, 덕분에 근거 없는 헛소문이라는 게 명백히 밝혀진 사안이다. 발견된 것은 모두 토지측량용 지지대였거나 해방 후 군부대가 텐트를 치기 위해 박은 고정 말뚝 따위였다. 애초에 일본인은 한국식 풍수를 믿지 않으니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쇠말뚝을 박을 이유가 없다.    영화 후반부에 담긴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일본의 오컬트 요소를 묘사하는 방식 그 자체다. 무당 화림은 “일본 요괴는 한국 귀신과 달리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인다더라”며 “이건 내가 지금껏 봐온 것과 전혀 다르다”고 연신 강조한다. 관객의 눈앞에 드러나는 ‘일본 괴물’의 정체 역시 황당무계하다. ‘검은 사제들’에서 가톨릭의 구마 의식을, ‘사바하’는 불교 중에서도 밀교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해당 요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보여주었던 장재현의 작품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이러한 난점은 굳이 나누자면 진보 진영 내에서도 어느 정도 지적되고 있다. 김훤주 해딴에 대표는 “영화 ‘파묘’는 겉으로 일제 청산 또는 반일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잇속을 밝히는 ‘국뽕’ 장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흥행도 좋고 일제 만행 고발도 좋지만 이미 거짓으로 판명된 쇠말뚝 이야기를 동원할 이유는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파묘’는 파죽지세의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3월 4일 현재 누적 관객 600만 명을 넘었고, 이 추세라면 올해 최초의 ‘천만 영화’ 등극도 충분히 가능할 듯하다. 사실 영화의 흥행은 매우 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현상이므로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영화평론가 등 소위 ‘시네필’이 대중적 흥행작을 못 알아보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은 따로 있다. 앞서 인용한 비판적 견해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만든 김덕영 감독이 불러일으킨 ‘좌파 영화’ 논란 때문이다. 가령 김훤주 대표는 앞 글의 도입부에서 “어떤 감독이 ‘좌파들이나 보는 영화’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래? 그렇다면 나도 봐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동네 영화관으로 갔다”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김덕영 감독의 발언이 없었다고 해서 ‘파묘’가 흥행에 실패했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좌파 영화’와 ‘우파 영화’를 갈라 내 편을 확보하려 했던 김 감독이 ‘파묘’의 초반 흥행에 긍정적 기여를 했다고 말해도 억측은 아닐 듯하다. ‘건국전쟁’을 안 봤거나 그 흥행을 불편해하고 있던 이들에게 일종의 ‘정치적 면죄부’를 발급한 셈이니 말이다. 이렇게 ‘파묘’에 담겨 있는 시대착오적 쇠말뚝 음모론, 이미 죽은 줄 알았던 그 ‘겁나 험한 것’이 다시 세상에 나와버렸다.      한국 영화계의 주류가 보수보다는 진보, 우파보다는 좌파 성향이 강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고 어떤 영화를 ‘좌파 영화’로 지목하는 것이 과연 ‘우파 영화’에 도움이 될까. 김 감독의 발언과 그로 인한 나비 효과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파묘’를 그냥 내버려 뒀다면 영화의 재미보다는 완성도를 따지고, 반일 국뽕 서사를 싫어하는 평론가와 관객들이 개봉 초기에 좀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파묘’가 흥행하지 못했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한국의 대중문화와 반일 코드라는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의 장을 열 수는 있었다.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일부 좌파 진영에서 심하게 왜곡했지만 친일과 반일, 보수와 진보의 관계는 1차 방정식이 아니다. ‘건국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을 자세히 다루었고 관객의 호응을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은 때로 미국마저 곤란하게 할 정도로 치열한 반일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김 감독은 ‘반일 영화’를 ‘좌파 영화’와 등치해버렸다. 그 결과 본인이 ‘건국전쟁’을 통해 깨뜨리고자 했던 ‘우파’와 ‘친일’을 동일시하는 대중적 편견이 더 힘을 얻게 되었다.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하지만 예술에 곧장 정치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예술의 발전뿐 아니라 정치적 효과를 거두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도한 반일 선동 비판은 지식인의 몫으로 남겨두고, 보수 영화인들은 ‘국제시장’처럼 보수적 감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영화를 만드는 일에 힘써야 하지 않을까.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03.06 00:05

  • "대체 어떻게 생겼길래"…대중의 호기심 위한 신상공개는 위헌 [김대근이 소리내다]

    올해 1월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신상공개가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피의자 신상공개는 우리 시대 뜨거운 감자다. 보복범죄부터 최근 정치적 테러까지 신상공개는 법리적 쟁점을 넘어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피의자 신상이 공개된 것은 2010년 연쇄 살인범 검거를 시작으로 한다. 그해 4월 특정강력범죄법을 개정해 피의자 얼굴 등을 공개하도록 했고, 같은 시기에 제정된 성폭력처벌법에서도 피의자 신상공개를 규정했다.    특정강력범죄법에 따른 피의자 신상공개의 요건은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할 것 ▶피의자가 19세 미만의 청소년이 아닐 것 등이다.    나아가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올해 1월 25일 시행됐다. 중대범죄신상공개법은 그동안 모호했던 신상공개 대상 범죄를 특정하여 예측 가능성을 조금 더 확보했고, 비교적 최근의 모습을 강제로 촬영(머그샷)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른바 국민의 알권리를 보다 강화했다. 또한 의견진술 기회와 이의신청 절차 등을 두어 절차적 권리보장을 명확하게 했고, 피의자뿐만 아니라 피고인에 대해서도 신상공개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전한 문제는, 피의자는 물론 피고인에 대한 신상공개 자체의 위헌성이다. 더 나아가 머그샷 촬영처럼 이를 강제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일단, 피의자 및 피고인에 대한 신상공개의 법적 성격이 모호하다. 확정 판결을 받지 않은 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보안처분이 아니기에 형벌과 보안처분을 분리한 우리 법체계와 사뭇 이질적이다. 심지어 강제처분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권 침해 논란이 따른다. 국가에 의한 피의자 신상공개가 위헌성 논란을 벗어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피의자 및 피고인에 대한 신상공개가 헌법상 무죄추정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신상이 노출됨에 따라 수사와 재판에서 피의자 및 피고인의 방어권이 현저하게 위축되고, 여론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각급 경찰청에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가 있지만 신상공개가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비판과, 여론의 주목을 받은 사건에서 유독 신상공개가 빈번했다는 지적을 상기해보자. 그뿐인가. 신상공개는 기본적으로 형법상 명예훼손과 피의사실공표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 피의자 가족 등 주변인에게 불필요한 피해가 갈 수 있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신상공개 과정에서 일부 강력범죄 피의자들이 카메라를 향해 범죄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양형을 의식한 듯 과장된 반성을 연출하는 모습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자칫 이 제도가 범죄자의 마이크로 전락하거나 가해자 서사(敍事)의 계기로 변질 될 수 있는 것이다. 미디어를 통한 피의자 신상공개는 파급이 크고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이 제도의 요건이면서 추구하는 효과인 국민의 알권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피의자 신상공개의 기대 효과는 요건으로 이미 규정되어 있다.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주 지적되지만, ‘국민’의 실체가 모호하기에 ‘국민의 알권리’는 막연한 개념이다. 피의자의 재범방지나 범죄예방을 내용으로 하는 ‘공공의 이익’ 또한 그 효과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실증 연구가 없을뿐더러, 범행 시 ‘형벌’도 고려하지 않는 범죄자들이 ‘신상공개’를 고려해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피의자의 공개된 신상을 통해, 더러 여죄를 파악하거나 수사의 협조를 얻을 개연성은 있다. 그러나 피의자 신상공개를 유지하는 제도의 추동력은 피의자에 대한 일반의 ‘호기심’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실상 그처럼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궁금증, 그리고 그가 나와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카메라에 노출된 피의자는 하나의 인간이라기보다는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격리되어야 하는 대상, 다시 말해 사회적 잉여로 타자화된다.    피의자 신상공개의 위헌성을 비롯한 여러 문제점 때문에 필자는 이 제도에 회의적이고 그 파급을 우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호기심과 달리 기본권으로서 국민의 알권리는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핵심기능을 가진다는 점, 더 나아가 공공의 이익을 명분으로 이 제도가 현재 운용되고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야당 대표 등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어떨까. 정치적 테러는 민주주의 이념과 법치국가 근간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범죄로 다루어져야 한다. 여기에 정치적 테러의 목적과 그 배후에 대해 많은 의혹이 따르고 실체적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면, 이를 충족시키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특히 국민 주권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바로 이러한 정치적 테러 사건을, 지극히 예외적으로 피의자 신상공개가 제도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알권리 등 공공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제도의 실효성과 정당성에 한층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02.28 00:01

  • '미적분∙기하' 빠진 수능…AI 도입해 수학적 역량 키워야 [김태일이 소리내다]

    수능 수학 과목에서 미적분2와 기하가 빠지게 되면서 논란이 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이과 수학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사라진다.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인 필자는 ‘미적분2+기하’ 선택 과목 도입을 국교위 심의 과정 내내 강력하게 주장했다. 국교위에서 유일하게 수능으로 대학을 진학했기에 이과 수학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 합의는 ‘수능의 대격변’으로 맺어졌다. 일부에선 이과 수학의 수능 배제가 학생의 수학적 역량을 저하시키는 ‘자해 행위’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 결정을 새로운 혁신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론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학생들의 수학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 수능보다 더 나은 제도를 찾아내야 한다. 알고 보면 수능이 다루던 수학 범위도, 필수 역량 확보엔 부족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불수능·물수능 논란이 끊이지 않음에도 국민이 수능을 신뢰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합의되고 공인된 공통 기준을 일괄 적용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발전된 시대상을 활용하여, 수능만큼 신뢰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더 다양한 학습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자는 내신·대학별 고사의 출제·평가 과정에 대한 ‘인공지능(AI)’의 전면 도입을 제안한다. 과거엔 ▶표준과 기준에 근거한 평가 ▶개별 특성을 고려한 입체적인 평가 ▶투명한 과정 공개와 부정 방지 조치라는 목표는 ‘이상적 구호’에 그쳤겠지만, 지금은 실현 가능하다.     수능은 ‘언어’시험이다. 대학 수준의 주제로 생소하고 제한적인 상황이 주어지면 발견적 추론과 정확한 소통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제한 시간 내 정답을 요구한다. 축구 선수가 기술을 익힌 후에도 체력 단련을 하듯 개념을 익힌 후엔 생각 근육을 훈련하는 것이 수능 공부 과정이다.        ━  수학은 영어보다 높은 차원의 국제공용어     수학도 언어다. 만사 원리를 표현해내기 위해 만들어진 체계다. 영어보다 높은 차원의 국제 공용어다. 자신의 구상을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선, 수학이 유창해야 한다. 또한 수학은 수능에서 유일하게 ‘쓰는’ 과목이다. 시험지에 여백이 가장 많다. 주어진 문제 상황을 따라 해석과 추론을 거쳐 답안 도출 과정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객관식 형태지만 주관식이나 다름없다. 출제 범위를 좁히면 제시할 문제 상황이 줄어든다. 동시에 변별력을 확보하려면 과도하게 어려운 문제를 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적분2와 기하 등의 제외 과목에서 다루는 내용은 컴퓨터적 사고를 위해 필수적이다. 컴퓨터는 세상을 좌표적 관점으로 인식하고 그 세계관의 움직임을 벡터로 이해한다. 미분 방정식과 차원 증감을 통해 분석과 예측을 거듭한다. 이를 위한 대용량 정보처리를 위한 수단이 행렬이다.     수학의 중요성과 심화 수학 도입은 다른 말이다. 다가올 시대를 지필고사 수능 제도가 온전히 뒷받침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겐 더 이른 시기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성취해낼 잠재력이 있음에도 대입까지 수능에 매어 젊음을 허비하게 하는 부정적 규제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과 수학이 사교육 증가 요인이란 단편적 반응, 일부 최상위 학생만을 위한 의대 진학용 과목이라는 인식, 수능 과목이 아니면 공부를 안 할 거란 걱정이 우리나라 공교육의 실태를 방증하고 있다. 학교 수업으로는 수능 대비가 불가능하고, 수능으론 대학이 원하는 역량을 평가하지 못하고, 대학은 실제 사회와 산업 현장과 동떨어진 교육에서 길을 헤매고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답보다 질문이 중요해졌다. 문제집의 답지가 없어도 문제를 촬영하면 풀이는 물론, 공부 방향까지 안내해 준다. 이 변화는 거부할 수 없으며, 비가역적이다. 이제 책보다 영상이 좋고, 그보단 짧은 추천 영상이 좋다. 심지어 입력이 없어도, 상황과 성향에 딱 맞는 정보를 선제적으로 띄워준다. 스마트폰 상용화는 고작 10년 남짓인데, 우리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개인의 인지와 지식으로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이겨낼 수 없다. 인간만의 알고리즘, 즉, 주체적이고 다변적인 이성을 확립해야 종속되지 않을 수 있다.      ━  교육 과정에 국가공인 AI 시스템 도입 필요     필자는 국가공인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개발해 학습ㆍ평가ㆍ행정 등 교육 과정 전반에 전격 도입하길 제안한다. 지금까진 어떤 선생님이 가르치고 시험 문제를 내는지에 따라, 편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 출제 근거와 평가 기준을 하나하나 세우고 조합하는 것도, 최종 성적이 갖는 의미를 상술하고 관리하는 것도, 선생님에겐 엄청난 부담이 된다. 결국 많은 과정이 어쩔 수 없이 경험과 직관으로 이뤄진다. ‘수행평가’와 ‘생활기록부’의 폐해 또한 이러한 배경에서 시작한다.     AI는 이런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자동 채점과 결과 분석부터, 시험문제와 구성의 질에 대한 평가와 세부적인 과정 기록 관리까지 가능할 것이다. 이 결과에 기반하여 담당 선생님이 최종적인 검수를 거친다면, 시험마다 선생님과 학생 모두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전국 규모의 ‘모집단’ 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하는 교육 AI의 성능은 사설 업체가 모방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을 악용하는 사교육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단순 ‘석차/등급’이 아니라 이런 학습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기록이 ‘내신 성적표’가 된다면, 충분히 수능만큼 신뢰할 수 있는 평가 지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신으로도 ‘심화 수학 역량 강화와 평가’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래엔, 프로젝트ㆍ시뮬레이션 기반 학습을 통해 과목 구분을 막론한 현실 문제 해결력을 길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경쟁심보다 호기심을 학습 유인으로 삼게 되고, 낙오자도 스스로 맞춤형 학습이 가능할 것이다. 전국 어디서든 같은 시스템이라면 지역 간 교육 격차도 완화될 것이다.     수능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아직까지 ‘책’을 강조하듯, ‘지필고사 수능’도 고유의 역할이 있다. 성취 확인 수준으로 난이도를 조정하되, 서열보다 가치 있는 분석을 결과로써 제공하면 된다. 수능 성적표가 100장쯤 되면 어떨까. 그해 대입에 사용하지 못해도 다른 어학시험처럼 성취도 이해와 사회 진출에도 활용할 수 있으면 어떨까. 수능을 ‘한국인의 한국 대입에만’ 활용하지 않고, 해외대학 유학이나 유학생 입시에도 활용하여 국제 표준으로 자리매김하면 어떨까. 그래서 대한민국 교육 업체들의 수능 콘텐트를 수억 명의 세계인들이 소비하게 된다면, 그 시장 규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김태일 국가교육위원회 위원ㆍ전 신전대협 의장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02.23 11:00

  • R&D 예산 깎아놓고 "목표도 낮춰라"…실패를 권하는 건가 [예성준이 소리내다]

    지난해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카르텔 발언 이후 올해 과학기술계의 연구개발(R&D) 예산이 삭감돼 논란이 일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대학의 겨울 방학은 수업이 없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좋은 시기이다. 그런데 올해 초 한국연구재단의 호출을 받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재단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을 이해 관계자들에게 설명하고 사실상 통보하는 자리였다. 일을 제쳐두고 먼 걸음을 해 애꿎은 담당자들에게 쓴소리를 했다. 그러나 그다음 주 교육부 주관의 연구 사업비가 일괄 삭감됐다는 통보를 e메일로 받았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예고편은 어느새 차가운 현실이 되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 펜을 든다.      지난해 12월 21일 국회에서 전년 대비 14.7% 삭감된 R&D 예산 수정안(26조5000억원, 정부 총지출의 3.9%)이 통과됐다. 이후 연구개발 현장에서 들려오는 걱정과 탄식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심각하다. 현장에서 느끼는 연구비 삭감 폭은 20%를 넘어 40%, 심지어 80%까지 이르고 있다. 필자가 참여하는 과기부의 연구개발 사업은 수주 시 협약안 대비 43% 일괄 삭감됐고, 교육부의 다른 연구사업 예산도 21.8% 삭감됐다. 주변을 둘러보니 60~80% 삭감이 흔하고 강제 종료도 있다고 한다.     더구나 국가전략연구 분야라고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까지 통과한 연구개발사업도 큰 폭의 삭감을 피해 갈 수 없었으니, 큰돈 들여서 수년간 예타는 왜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 삭감으로도 연구를 제대로 진행하기 힘든데, 40~60%를 삭감해 놓고 그만큼 연구 성과 목표를 낮춰 수행하라고 주문한다. 그래서 나온 성과물이 80% 성능이라면 실패를 조장하는 것이다. 더구나 올해 달성할 목표를 내년에 해야 한다면 치열한 기술 패권경쟁의 시대에 낙오자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카르텔을 언급했다. 어떤 분야이든 이권 카르텔이 있어서 공정과 정의를 해친다면 정부가 앞장서서 근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과학기술계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R&D 카르텔이 무엇이고, 예산 비효율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잡아냈어야 한다.     어떤 기준으로 R&D 예산을 삭감했고, 그 삭감 폭보다 더한 삭감을 과학기술 현장에 배분하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래 놓고 “내년엔 삭감된 예산을 원상복구 시켜주겠다” “첨단산업 분야에 대한 도전적인 R&D에 파격적인 지원을 하겠다” “과학 대통령으로 기억되겠다” 같은 말만 나온다. 이는 총선을 앞둔 과학기술계 달래기에 불과해 보인다. 최근에 KAIST 졸업식에서 언급된 “이공계 대학원생에게 연구생활장학금을 지원하겠다”는 언급도 삭감된 R&D 예산에서 순수 연구비(재료비·시설장비비 등)를 끌어다가 쓸 요량이면 또 심한 경쟁력 저하를 부추기는 꼴이 될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8월에 배포한 2023~27년도 국가재정운영 계획안을 보면, 국가 총지출 12개 분야 중에서 R&D와 교육 예산만이 전년도 대비 각각 16.6%, 6.9% 삭감됐다. 필자를 포함한 교수들이 심히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연구시설 운영비, 재료비, 이공계 대학원생 인건비 등 응당 정부와 대학이 지출해야 할 비용마저도 교수들이 경쟁해서 수주한 연구비가 아니라면 충당하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정부 R&D 예산은 윤석열 정부 마지막 해인 2026년까지도 연평균 0.6% 증액하는 것에 그친다. 이 수치론 지난해 수준도 회복할 수 없다. 이는 “R&D 예산을 정부 총지출의 5% 수준에서 유지한다”는 과학기술 분야 국정 과제 목표에도 한참 못 미친다. 이런데 ‘과학 대통령’이라는 말을 어찌 믿고 신뢰하란 말인가. 검사로 살아온 윤 대통령이 국가의 과학기술 시스템을 제대로 숙지하기에 1년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마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정권에서 영화 ‘판도라’를 관람한 후 “원전 추가건설을 막고 앞으로 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다는 상황과 유사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런 감성적인 결심이 현실적이어야 할 국가 에너지 정책의 근간을 이념과 정쟁의 영역으로 몰아넣었다. 결과는 200조가 넘는 부채를 떠안은 한국전력의 경영 부실과 원전 생태계 파괴로 이어졌다.     현 정부가 하는 일은 과학기술계 카르텔을 핀셋처럼 딱 잡아 뽑아낼 수 없으니, 거의 전 분야를 일괄 삭감한 후 버텨보라는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진정한 과학기술자라는 것이 정부 논리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마침 정부는 2025년까지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발표를 했다. 보도되자마자 대학생, 직장인 등 할 것 없이 의대 입시 문의 전화가 쇄도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허름한 대학 연구실, 정부 출연 연구원, 지식기반 스타트업 등 연구개발 현장에서 20~30대 젊음을 투자하며 안정보다 도전의 삶을 사는 이공계 대학원생과 신진 연구자의 슬픈 자화상이 대비됐다.     국가의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정책은 5년 정권에 따른 부침이 아닌 ‘국가 백년대계’하에서 결정되고 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5년 임기 정권의 이해나 그 어설픔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이고 안정적인 과학기술·교육·에너지 분야의 국가 시스템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대한민국을 과학기술 패권 시대에 진정한 과학 강국으로 거듭나게 하고 싶다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답을 구해야 한다.    예성준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4.02.21 00:01

  • 착한 다윗과 나쁜 골리앗?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그렇지 않다 [박용후가 소리내다]

    대형마트를 악으로 보는 이분법적 규제로는 전통시장을 살릴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정치인들이 전통시장을 찾아 상인들의 물건을 사주고 그들의 손을 들고 함께 만세를 부른다. 이제 선거철이라고 느껴지는 대목이다. 전통시장이나 자영업자들을 찾아 친근감을 표시하는 이유는 그만큼 표가 많아서다. 정작 정치는 이들을 살려내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다윗과 골리앗 이분법’의 함정에 빠져있다. 정치가 그렇고 국민의 인식이 그랬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우리는 항상 다윗 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작은 것은 무조건 보호해야 할 대상이고, 큰 것은 때려잡아야 하는 것 같은 이분법적 관점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았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가 충돌했을 때 정치는 덩치가 큰 골리앗인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것으로 대안을 내놨다. 처음에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운행하던 셔틀버스의 운행을 막았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 마트의 도심권 진입에 불을 지폈고 골목상권은 더 큰 피해를 보았다. 그러자 정치권의 도움을 받아 대형마트의 개장 일자를 규제했다. 이분법적이며 아주 쉬운 결정이었다.   정부가 대형마트의 의무 휴업 폐지안을 밝힌 지난달 22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의무 휴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정부는 이날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대형마트에 적용하는 공휴일 의무 휴업 규제를 폐지하고, 영업 제한 시간의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뉴스1    ━  이분법적 규제, 골목상권 못 살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저기를 막으면 이리로 올 거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면 미래에 어떠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날 것을 상상한 것이 아니라 과거로 돌아갈 것이라는 착각을 한 것이다. 이제 대형마트나 전통시장을 위협하는 것은 온라인쇼핑이다. 이미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막거나 규제하면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증명되었다. 이제는 생각의 방향을 뒤집는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강원도 삼척 중앙시장의 경우 전통시장 2층 빈 곳에 마트를 입점을 시키고, 마트 주변에는 청년들의 특색있는 작은 가게들과 어린이 놀이터도 입점시켰다. 경기도 여주 한글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에 마트를 입점시키자 마트가 사람을 모으고 그 사람들이 마트를 들러 전통시장으로 유입되는 효과를 본 것이다. 전통시장의 매출은 마트 입점 이후 20%나 올랐다. 오히려 ‘적과의 동침’이 좋은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또 다른 관점의 전환을 보자. 대전 신도꼼지락시장이 밀키트를 도입하고 고객과는 라이브커머스로 소통했다. 그에 더해 새벽배송꺼지 나서면서 매출이 치솟았다. 잠실 새마을시장의 경우 전통맛집과 쿠팡이츠를 연결하면서 사라졌던 활기를 찾았다. 소비자의 경험이 바뀌고, 소득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에 집중하고 미래의 변화를 염두에 두면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활동 인구 중 4명 중 1명은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 자영업에 종사한다. 그러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폐업한다. 이유를 살펴보자. 많은 자영업자가 선택하는 프랜차이즈의 경우 부도덕한 프랜차이즈 본사는 인테리어로 돈을 남기고, 광고비를 점주들에게 부담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들이 가진 노하우로 우리를 잘 키워주겠지‘란 절박한 믿음에 대한 배신이다. 점주들을 돕는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을 강요해 점주들보다 프랜차이즈 본사만 돈을 버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곳에는 철퇴를 내려야 한다.     그와 상반된 사례도 있다. 60계 치킨이라는 프랜차이즈가 있다. 특이하게도 이 기업은 창업 초기 비싼 임대료를 내는 곳에 가맹점을 내기를 꺼렸다. 그래서 매장 대부분이 이면도로나 임대료가 싼 곳에 많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점주가 직접 주방에 들어가 치킨을 튀기지 않으면 가맹점을 내주려 하지 않았고, 60마리까지만 치킨을 튀기라는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을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매일 튀김용 기름 한 통을 무상으로 지원했다. 인테리어도 점주들이 원칙에 따라 스스로 업체를 선정하면 된다. 광고비도 본사가 다 부담한다. 이런 정책 때문인지 다른 프랜차이즈에 비해 60계 치킨의 폐업률은 3.6%로 매우 낮다. 또한 가맹점 수를 700개로 제한해 기존 점주들을 보호하고 있다. 본사와 자영업자가 함께 성장하는 본보기다.    오픈업(www.openub.com)이라는 무료사이트는 입점하려는 점포의 매출을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상권을 정확하게 분석해준다. 몇시에 손님이 많은지, 성별 매출은 얼마나 되는지까지 자세하게 나오는 등 창업할 때 꼭 필요한 정보가 많다. 이 사이트를 이용해 창업을 준비하다 보면 창업하지 말라는 결론이 나올 때도 잦다. 이처럼 창업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도구와 정보들이 인터넷상에 무수히 존재한다.     ━  시대 변화에 맞는 상생협력 필요    세상은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미국 SF 작가 윌리엄 깁슨은 그의 저서 『뉴로맨서』에서 “미래는 이미 와있다. 다만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미 와 있는 미래를 보는 지혜는 힘든 시대를 건너가는 다리가 된다. 이제 세상은 큰 것과 작은 것, 쎈 것과 약한 것의 싸움이 아니다. 우리는 사라질 것과 다가올 것 사이를 살고 있다. 사라질 것을 붙잡고 다가올 것을 막으면 미래는 막막해진다. 사라지는 것은 슬기롭게 사라지게 하고, 다가올 것은 철저한 준비를 통해 맞이해야 한다.     이렇게 급변하는 현장에서 철 지난 과거의 정치 문법은 통용되지 않는다. 그들을 위한다는 속 빈말보다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이 더 절실하다. 착한 골리앗이 그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하고, 다윗들과 함께 힘을 합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할 때다. 세상은 나눌 때보다 합치고 곱할 때 더 커질 수 있다.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4.02.14 00:05

  • 프랑스 "난임 지원, 35세도 늦다"는데…한국 왜 20대를 외면하나 [최안나가 소리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난임 시술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이에 앞서 청년층의 난임 조기 검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프랑스가 25세부터 난임 검사를 무료로 실시하는 방안을 고려한다고 한다. 프랑스의 2023년 합계출산율은 1.68명인데 반해 한국은 0.7명이다. 그런데도 프랑스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대대적인 난임 지원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35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난임에 대비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싶다”고 전했다. 난임이 되고 나서 지원하면 늦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난임 정책은 어떠한가. 중앙·지방정부 모두 나서 난임 부부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젊은이들이 곧 난임이 되는 것은 손 놓고 보고 있다. 그래서 여성들은 임신이 잘 되는 20대에는 임신할까 봐 걱정하고, 임신이 어려운 40대에는 임신할 때까지 뭐든 다해야 한다는 이중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의 난임 증가는 의학적 문제가 아니다. 20대에 애를 낳을 수 없도록 하는 사회적 압력이 많은 국민을 난임의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즉 ‘사회적 난임’ 증가가 심각한 문제다. 여기에 정부가 나이 제한 없이 난임 시술 지원을 확대하면서 나이가 들어도 난임 시술을 계속하면 임신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그 결과 난임 시술을 받는 부부와 시술 건수는 매년 증가하지만 출산율은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는 난임 부부의 증가를 저출산의 원인으로 잘못 파악하여 정책을 펼친 결과다. 난임 증가와 저출산은 원인이 같다. 임신할 수 있을 때 아이 낳기 어려운 사회가 원인이다. 사회 문제를 의학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2019년부터 난임 시술이 건강보험이 되고 본인 부담금에 대한 지자체 지원도 병행하여 확대되면서 치료비 부담이 줄었지만 돈만 비용이 아니다. 반복되는 시술 과정에 들이는 시간과 스트레스 등 난임 부부의 고통은 실로 심각하다.     체외수정을 하는 여성의 80% 이상이 우울과 불안, 좌절 등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보건복지부는 전국에 난임·우울증상담센터를 설치하여 심리 상담과 정서 지원을 무료로 하고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이런 고통을 받는 국민이 더 늘어나지 않게 돕는 것이다.     20년 가까이 했는데도 안 되면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 난임 지원을 줄이자는 게 아니다. 이미 난임인 사람은 얼른 부모가 될 수 있게 실질적으로 돕고, 아직 난임이 아닌 젊은이들이 난임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예방 정책을 펼쳐야 한다. 임신 지원이 가장 필요한 20대 국민이 난임 정책에서 가장 소외되어 있다.     난임 예방 정책의 1순위는 공교육과 홍보다. 많은 난임 부부들이 이렇게 임신하기 어려울 줄 알았으면 더 일찍 시도할 걸, 그때 그 아이를 낳을 걸 등등 여러 후회를 한다. 나이에 따른 가임력 저하는 누구도 피할 수 없으며 의학이 발전하여 평균 수명이 늘어났어도 불로장생 할 수 없듯이 노화에 따른 가임력 감퇴는 어머니와 아이의 건강을 위한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공교육이 가르쳐야 한다.     여성은 35세 이상이 되면 아기의 염색체 이상과 자연유산 빈도가 높아지고 임신성 고혈압이나 당뇨 등 임신 관련 합병증도 증가하여 고위험 임신군에 속한다. 40대에는 가장 적극적인 난임 시술인 체외수정(시험관 임신 시술)을 해도 임신 가능성이 작아지고, 임신 되어도 자연 유산될 가능성은 커진다.   입시 교육엔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도 스무살에는 임신이 잘되고 35세가 넘어가면 어려워진다는 기본적인 성 지식도 알려주지 않는다. 위험을 알고 대비하는 것과 위험을 모른 채 닥친 후에야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은 과정도 결과도 다르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준비되면 나중에 임신할 것이라고 미루고 미루다가 난임이 되는 국민에게 그 위험과 어려움에 대해 알리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하도록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나서야 한다.       난임을 예방하는 가장 쉬운 길은 난임이 되기 전에 자신의 가임력을 알고 임신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지금 젊은이들은 정부가 모든 비용을 다 대준다 해도 아이를 낳을까 말까다. 생식 능력과 관련 있는 모든 진료비, 즉 산부인과와 비뇨의학과 진료를 20대 국민은 본인부담금 없이 검진받게 해서 난임 원인이 되는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게 지원해야 한다. 생식기 질환을 제때 치료받지 않아 훗날 임신을 원할 때 어려워지기도 한다. 20대 인구가 워낙 줄고 있고 예산도 많이 필요하지 않다.     혹자는 한 해 출생아 중에 난임 시술로 태어나는 아이들의 비율이 난임 지원을 시작한 2006년 약 1%에서 최근에는 10%대로 증가하였다며 이를 정책의 성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총출생아가 20여만명 감소하여 난임 시술 출생아 비율이 증가한 것은 정책 실패다.     우리가 원하는 게 난임 시술 증가인가 출생아 증가인가. 그동안 정부는 난임 시술만 계속하면 임신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줬다. 그 결과 많은 부부가 정부가 지원하는 만큼 난임 시술을 계속하는 것이 부모가 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라 여기고 병원을 찾는다. 출산을 늘리지 못하면서 난임 시술만 늘리는 정책은 여성들의 건강과 부부의 삶을 위해 이제 바꿔야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난임 부부들에게 도움 안 되는 예산을 쓰며 생색내지 말고, 이제라도 난임 예방 정책을 제대로 시작하자.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난임센터장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4.02.07 00:12

  • 김정은 "남한이 제1의 적"…경찰, 북한 해외공작 막을 수 있나 [윤봉한이 소리내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올해 들어 경찰이 전담하면서 안보수사가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새해가 시작되면서 국가정보원 대공수사 활동이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정치사찰과 비민주성을 이유로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수사 권한을 경찰에 독점시켰다. 국민 대다수는 국정원을 ‘간첩 잡는 기관’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국민 73.9%가 올해부터 국정원에 대공수사권이 없다는 것을 모른다는 지난해 여론 조사(자유민주연구원 등)가 있었다. 60.9%가 간첩수사는 국정원이 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이 몰랐다는 것은 전 정부에서 정치적 암산(暗算)에 따라 국가 안보 생태계를 무너뜨렸다는 의미다.       ━  국민 다수 "간첩 수사 국정원이 해야"    1990년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대소(對蘇) 정보담당자가 옛 소련의 정보기관인 KGB의 첩자로 활동하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알드리치 에임즈란 인물이 그 주인공이다. 십수년간 KGB 첩자로 암약하면서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CIA의 모스크바 내부 협조자 10여 명을 밀고하고, 비밀공작 200여건을 와해시켰다. 정보 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례로 평가받는 이 사건은 오히려 CIA 해외 공작 기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가정보원 전경. 사진 국가정보원 참혹한 9ㆍ11 사건도 정보활동 관련 법령을 강화하고, 국가정보국(DNI)을 신설하며 안보체계를 강화했다. 그래서 CIA는 오늘날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이 될 수 있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회가 발끈하며 비난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사뭇 상반된다.     많은 국민이 경찰이 과연 국가안보 수사를 잘 감당할 수 있을까를 우려하고 있다. 국정원에 상응하는 전문성과 지식과 기술을 구비하고 있는지 걱정한다, 북한-해외-국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수사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가 염려한다. 올해 내 인력을 증원하고 기구를 개편하겠다고 하지만 조직의 내재적 한계상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무엇보다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정원과 달리 경찰청은 행정안전부 산하 외청 기관으로 국회, 언론, 시민단체의 개입에 큰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둘째, 높은 정치 지향적 특성으로 정치권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셋째, 낮은 보안성이다. 간첩 및 안보 위해 사범 수사에 가장 필수적인 기밀성 유지가 힘들다. 넷째, 안보수사에 무관심하거나 냉대하는 분위기다. 그 예로 대공수사권 유예 3년 동안 조직이나 인력 개선이 전혀 없었다. 다섯째, 국정원과 원활한 공조 협력이 어렵다. 출처를 보호해야 하는 국정원 업무 특성이나 다층적 업무구조가 이를 어렵게 한다.    경찰청 및 시·도청 안보수사팀장 및 책임안보수사관 지원자들이 지난해 6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안보수사 지휘역량 평가시험에서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경찰 안보수사 전문성과 활동기법 한계  현재 경찰의 안보수사 능력에서 나타나는 한계도 있다. 경찰은 간첩과 안보 사범 수사에만 전념할 수 없다. 탈북자 관리, 산업스파이, 테러 사범 및 남북교류업무 지원까지 감당해야 한다. 전문성과 활동기법도 부족하다. 채용과 동시 대공수사로 특화되는 국정원이 가진 고도의 수사기법과 오랜 세월 축적한 경륜과 전문성은 경찰이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없다.      해외활동 여건 역시 미비하다. 중국과 동남아 중심으로 글로벌화하는 북한 대남 공작에 대응한 경찰의 해외 활동은 사법 주권 침해와 외교 분쟁을 유발할 수 있다. 해외 정보기관과 협력하는 것이 어렵고, 과학 및 사이버 수사가 취약하다. 이에 반해 국정원은 인간정보(HUMINT)를 중심으로 신호정보(SIGINT), 계측정보(MASINT)와 통신정보(COMMINT)를 비롯한 기술정보(TECHINT)까지 결합하는 정보를 지원받고 있다. 결론적으로 경찰은 국정원과 같은 수사 역량을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  문재인 정부, 안보사범 검거 4분의 1로 떨어져    문재인 정부 집권 5년 동안 검거한 안보 사범 건수는 이전의 25%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해 국정원이 ‘ㅎㄱㅎ 조직’ 등 일련의 사건에 수사 권한을 행사한 것이 단장을 끊는 듯한 몸부림이 되고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정원 수사권 폐지는 잘못”이라며 “경찰의 대공수사권 전담은 살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간첩사건은 충격적 안보위협” “종북 주사파는 반국가, 반헌법 세력”이라며 단호한 척결 의지를 밝혀 왔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김정은이 최근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선언하면서 윤 대통령의 안보 의지는 더욱 부각되고 있다. 여당 일부에서는 다가오는 총선에서 압승해 대공수사권을 복원시키자고 한다. 하지만 다수당의 위력으로 복원하게 되면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안보의 미래는 국민적 지지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런 상황에선 ‘국가안보기능정상화위원회(가칭)’ 같은 기구가 구성돼야 한다. 정부, 국회, 국정원을 비롯한 경찰 등 관계기관을 고루 참여시켜 전략과 이론을 개발하고, 국민 인식을 제고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헨리 키신저는 “국가는 안전보장과 국민안전을 기본으로 하면서, 궁극적 포부와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주체”라고 했다. 국정원은 이를 위한 국가 핵심 조직이다. 변화하는 안보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국정원의 대공수사 권한 복원이 꼭 필요하다. 국정원이 가진 안보위협 예방과 저지 기능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국정원의 역할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 수주대토(守株待兎·되지도 않을 일을 기다림)하다가는 치유 불가능한 ‘말기 안보 암(癌)’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윤봉한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4.01.31 00:05

  • 이재명 헬기 이송, 부산대병원이 '노' 할 수 있도록 해야 [이형기가 소리내다]

    흉기로 피습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헬기로 부산대병원에서 서울대 병원으로 이동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습은 일어나선 안 될 사건이었지만 그 후에 이어진 헬기 전원(轉院)은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 대표의 피습과 부산대병원으로의 이송, 응급 헬기를 이용해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의사들이 목이 터지라 외쳤지만 누구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던 한국 의료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  너도나도 서울로 몰리는 환자     문제의 본질은 지방에 환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실력을 갖춘 의사와 시설 좋은 병원은 지방에도 많다. 하지만 지방에서 치료를 받지 않으려는 환자들로 지역 의료는 소멸의 길에 들어선 지 오래다. 고속철도나 비행기로 이동하면 반나절 안에 서울 소재 유명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 대표는 응급 헬기를 탔기 때문에 특혜 시비를 일으킨 게 특별할 뿐이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당일 진료가 가능한데 이는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다. 그래서 상급종합병원의 50%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지만 병원들은 별로 경쟁을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로 병원 앞이 북적거릴 테니까.    따라서 지방에 공공의대를 설립한다고 해서 지역의료가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공의대를 졸업한 의사는 해당 의대가 소재한 지역 병원에서 수련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환자가 없으면 수련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이러면 환자는 서울로 더 올라갈 테니 악순환이 따로 없다.    그렇다면 전국적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해 의사를 더 많이 배출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의대생이 늘어나면 이들을 제대로 교육할 교수진 증원이 필요하고, 교육 환경과 시설을 갖춘 병원도 확보해야 한다. 백 번을 양보해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수련 과정을 마친 의사들은 환자를 찾아 결국 수도권으로 몰려들 게 뻔하다.      ━  공공의대론 지역의료 못 살려       소아청소년과 ‘오픈 런’으로 대표되는 필수의료 문제는 또 어떤가. 정부는 의사 수를 늘리면 인기과 경쟁에서 밀려난 의사가 어쩔 수 없이 필수 진료과를 선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위 ‘낙수 효과’를 노린다는 이 정책은 그 실효성을 차치하고라도 환자는 물론 의사에게도 매우 모욕적이다. 내 생명을 좌지우지할 결정을 내리는 필수 진료과 의사가 경쟁에서 밀려난 의사라면 누가 좋아할까. 사명감으로 필수의료를 지켜왔고 앞으로도 지켜나갈 의사가 입을 마음의 상처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낙수 효과를 통해 필수의료 부족을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주장도 현실과 다르다. 매년 전체 전공의 지원자 숫자는 늘 모집 정원을 상회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대표적인 필수 진료과에 해당하는 소아청소년과·일반외과·산부인과·흉부외과에 지원한 전공의 숫자는 항상 모집 정원에 미달했다. 그러니 의사 수를 늘리면 낙수 효과를 통해 필수의료가 살아나리라는 기대는 이쯤에서 접는 게 옳다.    한 번이라도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진료해 본 의사라면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의사 단체는 집단 이기주의로 매도당했다. 부산에서 피습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굳이 서울대병원으로 옮겨간 이 대표 사례에서 보듯 현재 한국의 의료전달체계는 지역완결형과 한참 거리가 멀다. 지역에서 발생한 환자가 해당 지역 의료기관에서 진료와 치료를 끝내는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완결형 의료전달체계는 응급의료와 필수의료에서 더 중요하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 전략’도 지역완결형 의료전달체계를 확고히 구축함으로써 지역의료의 소멸을 막기 위한 청사진이었다. 눈길을 끈 정책은 권역 책임의료기관에 지역 네트워크 병원 공급망을 총괄·조정하는 기능과 함께 성과 평가의 결과에 따라 재원을 배분하도록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지역의료 소멸을 막기는 여전히 어렵다. 지역 내 필수의료 네트워크는 정부의 기대처럼 공고해질지 몰라도 권역을 벗어나면 무용지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부산의 권역 책임의료기관인 부산대병원이 국내는 물론, 아시아 최대의 전문외상센터임에도 불구하고 권역 밖인 서울대병원으로 이 대표를 전원하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줄곧 뒷짐을 질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그 증거다.      ━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갖춰야    결국 지역완결형 의료전달체계는 권역 책임의료기관이 엄정한 문지기(gate keeper) 역할을 수행할 때 완성된다. 따라서 권역 밖, 예를 들어 지방에서 수도권 의료기관으로 환자를 이송할지 말지 결정할 때 타당한 의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아무리 보호자가 원해도, 전원 받을 병원의 의사가 요청해도 ‘아니오’라고 거절할 수 있게끔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이렇게 돼야 “잘하는 병원이 있어서”, “정신적 지지를 해 줄 가족의 간호가 필요해서”라는 비의학적 이유를 대면서 권역을 넘나들려는 시도가 사라진다. 권역 책임의료기관의 문지기 역할이 제대로 작동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을 우회하면서까지 응급의료전달체계를 깡그리 무시해 놓고도 전원 받을 병원의 의사와 미리 얘기했으니 무슨 문제냐는 식의 후안무치가 설 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그때 비로소 지역의료에 회생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려면 지역의료의 소멸을 걱정하는 척하면서도 아프면 당장 본인부터 서울의 큰 병원으로 달려가 진료를 받으려는 위선부터 멈춰야 한다. 입만 열면 강조하는 공공의대, 지역의사제, 의대 정원 확대로 지역의료가 절대로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형기 서울대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4.01.24 00:05

  • 총선 앞 자영업자 지원, 푼돈 쥐어주기 정책은 한계 있다 [남택이 소리내다]

    정부와 여당이 일정 금리를 넘는 대출이자 환급 등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선심성 지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래픽=정근영 디자이너 총선용 인지는 몰라도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를 위해 일정 금리를 넘어서는 대출이자를 지원해준다는 발표를 들었다. 또 한편에서는 소상공인 약 126만 명에게 20만원씩 전기요금 감면 혜택을 주고 전통시장에 대한 소득공제율를 높여 준다고 한다. 한 때는 동네 부동산이나 세탁소 주인도 직원 한 명만 있으면 사장님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자영업자는 산업화 시기에 내수를 받치던 국가 경제의 허리였건만 이제는 구조조정의 대상이자 노동생산성을 갉아먹고 있고, 국가의 지원이 없으면 쓰러지는 그런 존재가 됐다. 어쩌다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사장님들은 나라의 지원을 받아 연명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까.      먼저 지방의 자영업자는 어떻게 부를 얻었는지 역사를 되돌아보자. 일단 자식들이 공부를 어지간히 해서 서울로 대학을 보낸 집은 자식들의 하숙비를 보내주기보다 작은 집을 사서 자취를 시켰는데 교통이 편리한 고속터미널 근처에 얻거나 연탄 난방으로 값이 싸던 잠실에 집을 구해 주었다. 그 선택이 미래에 그 집안의 자식 세대까지 중산층 이상의 부를 이루는 갈림길이 되었다.    종자 부동산은 계속 오르며 첫째의 결혼 자금이 되고, 둘째가 오른 담보력으로 신혼집을 살 수 있게 되고 그렇게 경제발전에 따른 부동산 가치 상승의 혜택을 누렸다. 반면 부모의 자영업은 지속하기 어려웠다. 자영업 진입 규제가 풀리고 공급이 늘고 자본이 늘어나며 진입 장벽이 사라져 대부분 망했지만 자식들은 자산 증식 덕에 은수저라도 쥐게 되었다. 성패는 자식이 명문대를 다녔는지, 졸업 후 어떤 기업에 취직했는지가 아니라 아이들 자취 집을 마련했느냐와 그 지역이 서울 어디냐로 갈렸다.     자식을 서울에 보내지 못한 자영업자 부모들은 지방에서 아무리 노력했어도 그다지 좋은 결과를 갖기 어려웠다. 수도권 부동산 획득의 동기를 부여받지 못한 탓이었다. 꼭 지방만이 아니라 서울의 자영업자의 40년의 성과를 돌아보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변두리에 차고지를 사야 했던 택시운수업 사장님, 불량 주택이라도 창고 자리가 필요했던 주류업체 사장님, 아파트 상가라도 사서 약국을 했던 곳은 사업을 접게 되어도 땅이 남아 결국엔 일정한 부를 얻게 됐다.     아파트값과 땅값이 뛰어 성공한 경우를 투기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살집을 위한 선택이었고 보다 안정적인 업장을 마련하기 위해 한 다소 무리한 투자는 결국 국가 경제 성장과 함께 자산가치 상승으로 이어져 자영업의 성공 사례가 됐다.  즉 지난 40년, 아파트를 사지 못한 개인은 아무것도 쥔 것이 없게 된 것처럼 창고나 가게 자리도 사지 못한 자영업자는 노후를 걱정하게 되었다.    그것이 땅만의 문제였을까. 왜 1980년대에 자리 잡았던 자영업은 거의 모두 망하고 대를 물릴 수도 없었을까. 산업 구조의 개편 탓도 있겠지만 급격히 늘어난 인구 붐 세대를 1990년대부터 기업이 고용으로 완전히 품지 못한 탓이다. 취업은 쉬웠지만 기업은 그 모두를 받아들일 만큼 수를 늘리지 못했고 기업이 직고용을 기피하게 만든 노동 정책 탓에 기업은 외주를 늘리고 외주업체는 비정규직을 쓰거나 일용직을 쓰게 되고 프리랜서로 지입차 사장으로 몰리며 원하지도 않는 자영업 사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갈수록 경직된 노조만을 위한 노동 정책은 한번 그만둔 월급쟁이들을 다시 불러들이지 못하고 기업에 도급할 기회도 가지지 못한 퇴직 부장님은 식당 주인으로 대리점 점주로 몰렸다. 하지만 그 사장님들에게 경쟁은 치열했고 부모들과 달리 부동산을 사서 영업을 할 조건도 아니었기에 결과적으로 실패하여 부모 세대와 같은 성적을 받기는 어려웠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장사라고 하게 되면 기업이 되기 위한 창업이 아니기에 자본도 경험도 모자라 공급 과잉으로 인한 과당 경쟁 속에서 몇 년 버티다 쓰러지고 또 다른 장사를 해도 다시 고배를 마시는 악순환에 들게 되었다. 그렇게 뭔가 뜬다고 하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시장이 망가지는 것을 수없이 봐 왔다. 탕후루가 뜬다고 1년 사이 수도권에 1000곳이 늘어나 과열되는 상황은 달리 할 수 있는 자영업이 없다는 방증이다.      일본과 비교해도 인구 대비 식당은 두배 수준이고 편의점은 세배라고 하니 퇴직하면 할 만한 업종이 뭐가 더 있겠는가? 일자리는 민간에서만 만든다는 고정 관념을 버리라는 말을 하던 국가 지도자를 거치며 이제는 기업도 자영업자도 급여 생활자도 모두 어려워졌다. 사람 쓰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으니 재고용은 어렵고 그렇다고 자영업을 못하게 할 수도 없다면 우리 자식들이 창업 후 5년 내 80%가 망한다는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그 답은 자영업 안에 있지 않다. 자영업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공급 과잉이고 공급을 줄이는 방법은 기업이 고용을 늘려 자영업에 진입하지 않아도 되도록 기업을 키우는 큰 정책뿐이다. 이 사업 저 사업 전전하다 돌고 돌아 치킨집을 해야 하고 택배를 해야 하고 지입차로 트럭을 몰지 않아도 되도록  기업이 인재들을 널리 품을 수 있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자영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며 도와주는 길이지 선거에 맞춰 푼돈을 쥐여 주며 연명하게 하는 것은 자영업이라는 만성질환 환자를 중환자실로 모시고 가는 일이다.    남택 건축사·푸드애널리스트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4.01.17 00:05

  • '제2 타다금지법' 또 만드나…플랫폼 경쟁촉진법이 무서운 이유 [구태언이 소리내다]

    정부에서 추진 중인 플랫폼 경쟁촉진법이 AI 중심으로 치열해지는 글로벌 디지털 경쟁에서 국내 IT산업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2021년 말 세상을 강타한 챗(Chat)GPT발 인공지능(AI) 열풍이 불과 1년도 안 돼 세상을 바꾸고 있다. 유럽연합(EU)은 AI법을 2026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미국도 지난해 10월 바이든 대통령이 AI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해 올해 내에 연방 기관의 AI 사용지침을 마련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열린 AI 안전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AI는 선진국 정부가 크게 관심을 갖는 수출 무기이자 무역장벽의 최대 현안이 되고 있다.    앞으로 AI로 무장한 글로벌 빅테크 플랫폼이 각국 내수시장의 강력한 파괴자가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달리’나 ‘미드저니’ 같은 영상제작 AI를 활용해 누구나 전문가 수준의 영상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자 관련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우리는 경직된 사전규제 시스템을 혁파하지 못해 의료·금융·법률·운수 등 전통적 산업 분야에서 우리의 미래를 이끌 유니콘 기업을 양성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AI 전쟁터에서 우리는 어떤 전략적 행보를 가져가야 할 것인가.      ━  AI로 무장하고 몰려오는 글로벌 빅테크 플렛폼   1990년대 말 창업한 네이버, 다음(현 카카오)이 국내 인터넷 시장을 사수해 준 덕에 토종 IT기업들이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와 국내 시장에서 유효한 경쟁을 벌여 왔다. 미국은 인터넷 산업의 각종 규제를 미룸으로써 다양한 산업의 디지털 변환에 성공해 글로벌 빅테크를 무수히 양산하고 전 세계 산업을 지배하고 있다. 이제 초거대 AI  미보유국은 글로벌 경제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될 것이 명확한 지금 우리는 우리의 사전 규제 시스템을 혁파할 한계점에 다다랐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플랫폼 경쟁촉진법은 글로벌 경쟁 시장에 이미 편입된 한국의 산업경쟁력에 큰 족쇄가 되어 결국 토종 플랫폼의 패퇴로 귀결되어 해외 빅테크가 어부지리를 얻게 될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과 경제전쟁이 벌어진 상황에서 국내기업에만 작용할 규제 입법은 국내기업의 활동에 큰 제약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만 보아도 쿠팡이 크게 성장해 소비자들을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지게 만들자마자 중국의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이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엄청난 물량의 광고와 할인 공세를 벌여 사실상 영토 전쟁이 벌어진 상황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플랫폼의 독과점을 규제하는 '플랫폼 경쟁촉진법' 제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공정위는 EU의 DMA(디지털시장법), 독일의 경쟁제한방지법을 사례로 들고 있으나, EU의 경우 토종 플랫폼이 미국 빅테크에 궤멸돼 미국 빅테크를 상대로 ‘법률 전쟁’을 벌이고 있는 참담한 현실을 겪는다는 걸 간과하고 있다. 구글,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넷플릭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와 맞서 싸울 수 있는 토종플랫폼이 없다면 우리 시장은 누가 지켜낼 것인가. 이렇게 호시탐탐 글로벌 빅테크들이 노리고 있는 디지털 경제전쟁터에서 결국 국내기업에만 적용될 규제 입법을 만드는 것은 소탐대실이자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이다.    ━  사전규제로 스타트업 혁신 경쟁 소멸    공정위가 지난해 12월 보도자료에서 밝힌 사례 중 카카오T의 독과점화는 바로 정부가 ‘타다금지법’을 통해 혁신 모빌리티의 싹을 잘라 버린 것이 근원이다. 과도한 사전규제로 스타트업이 혁신을 실험할 경쟁시장 자체를 없애 버린 타다금지법이 모든 정부부처에 널려 있는데, 이 땅에서 대기업 말고 마음껏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몇 안 되는 토종 플랫폼들이 글로벌 빅테크와 여러 분야에서 경쟁하는 우리나라에서 강력한 플랫폼 규제 입법은 결국 모험자본의 국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위축, 글로벌 투자자들의 국내 시장 외면을 낳아 이제 막 성장하는 미래 유니콘들의 성장동력을 잃게 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경쟁정책이 벤처정책과 함께 가지 않으면 결국 한쪽 엔진을 잃고 추락하는 비행기와 같은 신세라는 점을 정부가 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미래 경제를 수호할 거대 디지털 기업은 최소 20년 동안 성장해야 글로벌 빅테크와 맞설 정도의 규모가 될 수 있다. 90년대 말 창업해 성장해 온 네이버와 카카오가 그 역할을 하고 있어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패배한 곳이 우리나라라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플랫폼 경제를 위협하는 초거대 AI전쟁에서 우리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비실명정보를 과잉보호하는 개인정보보호법과 저작물의 AI 학습을 막는 저작권법이 초거대 AI를 만들 학습데이터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네이버만이 초거대 AI(하이퍼 클로바 X)를 출시할 수 있는 이유는 네이버 외에는 초거대 AI를 만들 수 있는 데이터를 가진 곳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또 간과할 수 없는 큰 헌법적 문제가 플랫폼 경쟁촉진법에 숨어 있다. 바로 정부가 기업의 영업 비밀인 알고리즘의 조사를 공언하고 있는 점이다. 특히 AI는 수많은 복잡한 소스코드로 이루어진 것으로 수많은 자원이 투입되어야 개발할 수 있으며 기업경쟁력의 핵심이다. 그래서 국가는 부정경쟁방지법, 저작권법을 통해 소스코드를 핵심 영업비밀이자 지식재산권으로 보고 적극 보호하고 있다.     지배적 플랫폼 금지 행위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공정거래위원회] 플랫폼 붕괴, 소상공인 붕괴로 이어져  경쟁촉진을 명분으로 정부가 소스코드를 가져갈 수 있는 나라에서 어떤 기업도 AI를 연구 개발하기 어렵고, 해외의 유수의 AI 기업들도 국내 시장 진출을 꺼릴 것이다. 이러한 알고리즘을 정부가 내수시장의 경쟁 조사를 명분으로 가져가서 파헤칠 수 있는 국가는 중국 이외에는 없다. 결국 한국만 새로운 AI 산업혁명에서 뒤처지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 우려된다. 국내 플랫폼의 붕괴는 결국 소상공인의 붕괴로 이어질 것인데 이런 결과를 낳을 규제 입법이라면 이를 굳이 도입할 필요가 있겠는가.      정부는 혁신기업이 기존 시장에 마음껏 진입해 다른 기업들과 경쟁을 할 수 있는 열린 규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각 산업 분야의 수많은 타다금지법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디지털 경제전쟁에서 우리 주권을 지켜줄 미래산업을 갖기 어렵다. 정부는 혁신산업이 기존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 국민의 선택권을 넓혀주는 한편, 경쟁에서 패퇴한 기존 산업의 이주 대책을 세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 부처들이 기존 산업의 붕괴를 우려해 온갖 사전 규제로 혁신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동안 안방을 위협하는 AI 전쟁이 코앞에 펼쳐지고 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TMT그룹 총괄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01.10 00:10

  • 이재명 헬기 논란…특권의식이 시민의 직업윤리 묵살했다 [노정태가 소리내다]

    흉기로 피습 당한 이재명 대표가 헬기로 부산대 병원에서 서울대 병원으로 이동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 후보 시절 ‘차별 없이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는 것이 공평한 나라를 만드는 기본이다. 무턱대고 대학병원을 찾고 우왕좌왕 옮겨 다니면 비용도 들고 치료 시기도 놓친다’고 말했다. 부산대 국가지정 외상센터가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센터이므로 이 대표는 부산대에서 수술을 받는 게 본인의 말을 지키는 것이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는 습관에 밴 특권 의식에서 나온 진료 패스트트랙이고 수술 새치기이다. 이런 정치인들의 행태는 의료진에 대한 부당한 갑질과 특혜 요구이고, 진료 방해 행위이고 국민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공정하지 않은 일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등이 지난 8일 서울중앙지검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민주당 천준호·정청래 의원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밝힌 내용이다. 사건의 맥락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난 2일 이재명 대표가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 예정지에서 피습을 당한 후 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그곳에서 간단한 응급처치만 받은 후 119 응급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향한 사건의 후폭풍이 지금까지 몰아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치인이 피습을 당하면 여야 할 것 없이 그 해당 정치인에게 우호적인 동정의 시선이 쏟아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의료계 당사자들의 시선이 몹시 차가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국민 여론마저도 이 대표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직접적 폭력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 대표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단지 우리 국민의 감정적 심기를 거스른 것을 넘어 우리 사회가 현재 품고 있는 다양한 모순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가장 명백하게 드러난 점부터 이야기해보자. 이 사건은 지역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차별적 시선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마다 지역 균형 개발을 약속하며 지역 주민들의 자존심을 채워주기 바쁘다. 그런데 막상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청래 의원은 “목은 민감한 부분이라 후유증을 고려해 (수술을) 잘하는 곳에서 해야 한다”며 이 대표의 서울행을 정당화했다.    중화학 공업의 비중이 높은 영남권의 특성상 외상센터의 규모나 의료진의 수, 일 년에 치료한 환자의 수 등에서 부산대병원은 서울대병원보다 객관적으로 우수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으신 분’들의 말 한마디에 ‘잘하는 곳이 아닌 어딘가’가 되어버렸으니 의사들로서는 황당한 노릇이다. 지역을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이 의료인들의 노력과 헌신을 순식간에 평가절하해 버린 셈이다.   또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특권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이 대표가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기 위해 출동 대기 상태여야 할 119 구급 헬기가 동원됐다. 서울대 병원에서도 다른 응급 환자들을 제치고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응급실은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다. 연간 응급실에 오는 중증외상 환자는 약 12만여 명. 그중 3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부산에서 서울로 향한 이 대표의 선택은 권력을 앞세워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는 ‘의료 새치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지역 차별적 시선을 전제로 한 특권의식은 왜 문제일까? 평범한 시민들의 직업윤리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직업윤리는 모든 이들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근대적 윤리 가운데 하나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설명했던 바로 그것이다.   직업윤리 개념은 두 가지 효과를 낳는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하게 된다. 또한 모든 일은 아무리 힘들고 보잘것없는 일이어도 사회적 소명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인정받으며, 이는 사회적 평등 의식의 토대가 된다.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맡은바 자기 일에 충실한 시민들, 수많은 직업이 어우러져 살아가기에 타인의 직업과 삶을 존중하는 현대인의 윤리가 바로 직업윤리라 할 수 있다.   야당 대표가 흉기로 피습당하는 대형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이 대표의 편에 서는 일방적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 대표가 119 응급헬기를 타고 서울대 병원으로 향하는 순간 사안의 논점이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생사가 오가는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을 ‘좋은 병원’이 아니라고 말한 셈이 되면서 그들의 직업윤리에서 나오는 자긍심에 상처를 입혔다. 이는 수출 공업 국가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부산·울산·경남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자존심과도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은 문제다.   야당에 우호적인 인사 중 일부는 이 사안을 부산대병원과 서울대병원의 싸움으로 여기고 싶어하는 듯도 하다. 삐뚤어지고 잘못된 생각이다. 고발장을 낸 소청과의사회뿐 아니라 부산시의사회, 전라북도의사회, 대전시의사회, 경상남도의사회, 심지어 서울시의사회마저 “헬기 특혜 이송이 지역의료계를 무시하고 의료전달체계를 짓밟아버린 민주당의 표리부동한 작태라고 지적한 부산시의사회에 십분 공감한다”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만 봐도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지난 5일 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이 “제1야당 대표는 국가 의전 서열상 총리급에 해당하는 8번째 서열에 있다”며 헬기 이송을 옹호하는 듯한 페이스북 발언을 남겼던 것은 실로 많은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갈등은 여당과 야당의 싸움이 아니다. 근대적 직업윤리를 지키고자 하는 수많은 시민과 전근대적 특권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권이 평행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특권의식에서 벗어나 직업윤리의 편에 서는 정치가 절실하다. 그러한 반성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만 해야 할 일이 아닐 것이다. 이번 사건은 정치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되짚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재명 대표의 빠른 쾌유를 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4.01.09 00:05

  • [조기숙이 소리내다] 시대정신 대변자가 총선 승리…양극화된 정치 타파해야

    4월 치러지는 22대 총선을 통해 진영논리와 양극화한 정치를 타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거대 양당에 도전하는 다양한 신당이 추진되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미국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최근 높은 비율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주요 이유로는 정치 양극화에 의한 의회 마비를 꼽았다. 우리 국민도 양극단 정치에 신물을 낸다는 점에서 미국과 다를 바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끌었던 지난 1년 반 남짓의 정치는 암울했다. 대선의 경쟁자였던 두 사람이 양당을 장악하고 연장전을 벌이고 있어 그렇다.   선거는 유권자가 표로 각 정당을 평가하는 가장 정확한 민심의 바로미터다. 모든 선거 결과는 승리한 정당을 통해 시대정신을 대변한다. 반복되는 선거를 통해 정치인은 민심 읽는 법을 배우고, 다음 선거 승리를 위해 시대정신을 담은 비전을 제시한다. 선거가 지속될수록 민주주의는 점점 더 좋은 정치로 발전할 거란 기대가 가능하다. 그런데 왜 민주화 이후 거듭 발전해 온 우리 정치는 최근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을까.   그래픽=박경민 기자 최근 급격히 정당의 기능이 쇠퇴한 이유는 선거가 본래 기능인 ‘경쟁’을 상실한 데 있다. 민주화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빈부격차에 따른 거주지 분리(segregation)가 일어났고, 유권자도 2000년대 중반 이후 계층투표를 해왔다. 그 결과 상당수 지역구에선 투표를 해보기도 전에 선거 결과 예측이 가능해졌다. 영·호남처럼 지역주의가 심한 곳은 물론이고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몇몇 지역구와 마포·용산·성동구를 제외하곤 강북은 민주당, 강남은 국민의힘 당선 가능성이 높은 ‘안전 의석(safe seat)’이다. 경쟁 의석이 다수 사라지면서 정당은 더 이상 민심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됐다.     ■  「 ‘공천=당선’에 정치권 민심 무시 극단적 후보 선호하는 현상 심화 제3당, 거대 양당 기득권 깨야 」  안전 의석이 많아질수록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의석을 몇 석 잃더라도 당 장악력과 후일을 위해 자기 사람을 공천하려는 욕심이 강하게 들 것이다. 반정치적이거나 비정치적인 유권자가 다수 정당원으로 유입되면서 당내 경선에서 사이다 발언의 극단적 후보가 인기를 끌자 정치 양극화는 점점 심해졌다.     물론 어느 정도의 경쟁 의석이 남아 있기에 선거가 다가올수록 각 당은 쇄신도 하고, 민심을 받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역대 총선에서 수 개월 전의 여론조사 결과대로 선거 결과가 나온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앞서던 쪽은 안주하다 패하고, 뒤지던 쪽이 강하게 쇄신해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재보궐선거는 오롯이 정부와 여당을 심판하는 기능을 하지만, 총선은 시대정신이 중요하다. 2012년 총선에서 이명박 정부심판·교체 여론이 50%가 넘었지만 새누리당은 총·대선 모두 승리했다. 2016년 총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40%가 넘었기에 새누리당의 압승이 예견됐지만, 김상곤 혁신위원회로 쇄신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이 됐다.   2012년 총선 당시 여당의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김종인 비대위원을 영입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내세워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함으로써 승리했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이념성이 강한 통합진보당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고리로 후보 단일화를 했다. “야당이 자동으로 정권심판 표를 얻는 건 아니다. 민주당의 이념적 좌클릭이 위험한 수준”이라는 필자의 경고를 외면한 채, 다 이긴 선거라고 생각했던 민주당은 총선과 대선 모두 패했다.   총선에선 여당 못지않게 야당의 비전도 중요하다. 시대정신은 그 시기 국민의 강한 불만과 욕구가 분출하면서 표출된다. 이번 총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국민의힘은 적어도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었다는 점에선 성공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정치인이나 진영의 이익보다 국민 먼저”라고 일갈했다. 새해 첫날 발표된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양당 지지도가 오차범위 내에서 엇비슷하게 나타난 건 한 위원장 취임 효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동훈 체제는 이명박 정부 임기 말 차별화를 시도했던 박근혜 비대위와 달리 한계도 분명하다. 임기 중반도 안된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여당이 택하기 어려운 선택이기 때문이다. 정부 견제 여론이 흔들림 없이 높은 게 그 증거다.   여전히 높은 견제 여론은 민주당에 반사 이익을 안겨줄까? 정부 견제만 내세워 민주당이 참패했던 대표적인 선거가 2008년 총선으로 투표율이 46.1%에 불과했다. 친민주당 성향 유권자에게 무조건 지지란 없다. 민주당이 시대정신에 부응하지 못하면 기권으로 양당을 심판해왔다. 민주당 승리가 항상 높은 투표율에 의해 추동됐던 이유다.   실제 언론사의 신년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양당 각각 1당이 될 수 없다는 응답이 과반에 달한다(중앙일보 1월 1일자). 반면, 양당 모두를 심판해야 한다는 여론(한국일보)이나, 신당이 출범하면 지지하는 정당을 바꿀 의향이 있다(중앙일보)는 여론은 적지 않다. 야당이 반사 이익만으론 승리할 수 없다며, 민주당이 혁신하지 않으면 제3당이 출현할 거라고 필자는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다.   선거의 핵심은 경쟁이다. 그래야 의원이 공천자가 아니라 민심에 충성하게 된다. 제3당은 안전 지역구에도 경쟁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양극화된 정치를 타파하고 진영논리를 극복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한다. 이미 기득권화된 민주당은 누워서 떨어지는 감이나 먹으려다 이낙연 신당 소식에 화들짝 놀라 만류하는 연서명을 했다. 하지만 그들 기대와 정반대로 양당 경쟁에선 국민의힘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신당이 등장해야 친야당 기권표를 흡수함으로써 여당의 독주를 막는데 성공할 것이다.   ◆조기숙=정치분석가로 활동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홍보수석을 지낸 인연으로 지난 20년간 친민주당 논객을 자처했다. 최근엔 한국 정치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에 초당적인 논평가로 돌아왔다. 한국 정치의 혁신을 갈망한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01.03 00:19

  • [하헌기가 소리내다] 병립형 비례제가 퇴행이라고?…정치 주체들이 퇴행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선거제도 보다는 제대로 된 정치를 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혁신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아무말 대잔치’를 보고 있다. 선거제도 개편을 둘러싼 갑론을박 말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내 정치 활동의 8할을 차지하는 의제가 선거법 개정이었다. ‘정치개혁 2050’이란 초당적인 그룹을 만들어 활동했다. 결말이 허무하다. 현재 논점은 두 가지다. 첫째,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되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을 것인가. 둘째, 더불어민주당이 수차례 했던 ‘정치개혁’에 대한 약속을 어찌할 것인가.    먼저 나는 민주당과 이재명 당대표가 선거제도 개혁과 위성정당 방지를 수차례 약속했던 만큼 이를 못 지키게 되었으면, 그에 대해 직접 국민에게 정직하게 해명하고 돌파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민주당이 지켜야 할 정치적 도의와 별개로 실질적 정치개혁이라는 차원으로 보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에서, ‘병립형 회귀’와 ‘연동형 유지’ 사이에 어떤 제도적 우열관계가 남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본래 논점은 그게 아니었다. 핵심은 ‘어떻게 민심과 닮은 국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가령 지난 21대 총선 결과를 보자. 민주당의 지역구 득표율은 49.91%, 더불어시민당의 정당 득표율은 33.35%였다. 그런데 민주당의 의석은 180석이었다(300석의 60%). 민주당은 180석을 얻은 후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고 반복적으로 말했지만 실제론 민심의 지지를 정확하게 반영한 의석비율이 아니었다. 지난달 1일 국회 의사당 앞 계단에서 노동당·녹색당·정의당·진보당 등 진보4당과 2024정치개혁공동행동 관계자들이 대표성과 비례성을 보장하는 선거제 개혁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여러 나라에 다른 대안이 있다. 독일의 정당명부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경우 지역구 의석 299석은 소선거구제로 채우지만 비례대표 의석 299석은 전체 의석(600여석) 중 의석 비율이 정당 득표율에 대응하도록 배분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정당들은 유권자에게 지지받는 만큼 의석을 갖는다. 프랑스식 결선투표제도 있다. 1차 투표에서 유권자 수의 25% 이상의 득표를 하지 못하거나 유효투표의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하면 결선투표로 넘어간다. 이 방식의 함의는 어느 정도 사표를 방지하고 응징투표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  선호투표보다 응징투표 성향 강해    한국의 투표 경향은 선호투표보다 응징투표에 가깝다고 해석된다. 응징투표는 내가 좋아하는 정당과 후보가 있어도 그가 ‘소수파’에 해당할 경우 그에게 투표하면 ‘내가 싫어하는 정당의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될 수 있다는 공포로 작동한다. 그래서 ‘사표’가 되지 않기 위해 거대 양당 중 한쪽에 표를 던지는 관성이 강화된다 본다.    즉, 선호투표를 억제하고, 다량의 사표가 발생하게 만드는 현 제도는 ‘진짜’ 민심을 왜곡한다는 게 정치개혁론자들의 논리다. 독일에선 득표율대로 의석 전체를 배분하고, 프랑스에선 결선투표가 있으니 1차 투표에선 선호투표를 할 수 있어서 그게 어느 정도 가능한데 한국은 그 비슷한 장치가 전혀 없다.    내가 지난 1년 동안 주창했던 것도 그런 식으로 조금이나마 ‘민심과 닮은 국회’를 구성하는 정치개혁을 해보자는 거였다. 골자는 ‘소선거구 폐지’였다. 한국에서 독일식 제도를 하려면 비례대표를 확대해야 하는데, 의원정수 자체를 늘리거나 지역구 의석을 줄여 비례대표로 전환해야 했다. 불가능하다. 전자는 국민이 허락하지 않고 후자는 선거법을 개정할 권한이 있는 지역구 의원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거구제를 대선거구로 개편하면 의석 구조는 그대로 두면서도 승자독식 선거제를 파훼할 수 있게 된다. 대선거구에서 득표율대로 국회에 들어올 수 있게 설계할 수 있으니 국민도 선호투표를 하고, 민심과 닮은 국회를 만들 여지가 생긴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논의 끝에 ▶중대(中大)선거구제(도농복합형)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소(小)선거구제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 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등 세 가지 안을 마련해 국회 전원위원회에 넘겼다. 하지만 그 주장은 누구도 아닌 국민에게 파산 선고를 받았다. 정개특위에서 공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국민은 소선거구 유지, 비례대표 확대를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의원 정수에 관해선 숙의 전보다 숙의 후에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늘었단 점이 고무적이나 최종 결과는 여전히 의원정수 확대(33%)보다 의원정수 축소(37%)와 현행유지(29%)가 더 높았다. 민심을 받들어 비례대표 확대를 하려면 지역구를 줄여야 했다. 그러나 선거제 개혁을 주장하는 꽤 많은 국회의원도 중 누구도 자기 지역구를 내려놓겠단 사람은 없었다.    성찰해야 할 게 있다. 선거제도를 바꾸려면 결국 ‘국민적 합의 강도’가 아주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연동형 비례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 강도가 높고, 위성정당이 유권자를 엄청 분개하게 만다는 일이어서 정당 득표율에 큰 영향을 줄 정도라면 사실 따로 ‘방지법’이 필요 없다. 비례의석 몇 개 얻자고 선거에서 패하는 선택을 하는 정당은 없기 떄문이다. 하지만 위성정당이란 ‘꼼수’를 쓰면 유권자가 그 당을 ‘심판’하기는커녕 그 위성정당에 표를 줄 거라는 걸 정치인들도 안다. 사실은 방지법을 만들어봤자 그 당 인사 출신들이 만드는 형제정당, 자매정당이 생길 뿐이다.    이는 국민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합의한 적도, 그 논의에 제대로 참여한 적도 없기에 생긴 일이다. 제도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없는데, 심지어 다른 거대 정당과의 합의도 없이 강행처리를 했으니 기형적인 정치 상황이 계속 벌어진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합의해준 바도 없는 제도이니 위성정당을 만드는데 거리낌이 없다. 즉, 제도의 문제 이전에 ‘합의’라는 본령을 우습게 여긴 정치가 더 큰 문제인 것이다.     ━  다양성 확보 위해 정당 운영 방식 변해야    선거제 논의를 둘러싸고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다당제가 정치 극단화를 막는다’, ‘신생 정당이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와 같은 좋은 명분들과 ‘그래도 선거에선 이기고 봐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넘실댄다. 혹자는 병립형 비례제를 ‘퇴행’이라고 한다. 그러면 현행 연동형 비례제 하에서 거대정당들의 자매정당 사돈정당들이 우후죽순 생기는 건 ‘진보’인가? 그런 ‘신생’ 정당들에 무슨 ‘다양성’이 있는가? 보통 그 자매정당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거대정당들보다도 훨씬 ‘강성’이다. ‘중도 확장’을 해야 승리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대정당들과 달리 주로 ‘매운맛 지지층’에게 어필하면 의석을 획득하는 자매정당들이 과연 정치 극단화를 완화할까 아니면 더 촉진할까?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지역구 예비 후보자 등록을 하루 앞둔 11일 서울 양천구 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 후보자 등록 접수 안내문이 붙여져 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예비 후보자 등록 접수는 내년 3월 20일까지 진행된다. 뉴스1 다양성을 확보하고 싶으면 정당운영을 그렇게 하면 된다. 직능·지역·성별·세대 등 다양하게 안배해서 유리한 지역구나 비례 당선 순번에 공천하면 될 일이다. 다당제가 정치 극단화를 막는다? 남미와 유럽에서 부는 극우정당의 광풍은 뭔가? 이탈리아,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전부 다당제 국가인데 세 나라 모두 극우파가 집권하거나 제1당에 됐다. 제도가 무엇이든 정치의 ‘주체’가 ‘친윤’이니 ‘친명’이니 하는 기준으로 정당운영을 하면 제도가 무엇이든 정치는 극단화되고 획일화된다.    ‘신생 정당이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하니 연동형을 유지하자’는 이야기나 ‘선거에선 이기고 봐야 하니 병립형으로 가자’는 말 역시 ‘아무말’인 건 마찬가지다. 21대 국회의 준연동형 비례제에선 유의미한 3당이 없었다. 오히려 병립형일 때 국민의당, 민주노동당, 자민련 같은 제3당이 선전하곤 했다. 기존 정치세력이 불신받고 신진 세력이 지지받으면 제도가 무엇이든 국회에 들어온다. ‘병립’이라 이길 수 있고, ‘연동형’이라 지는 게 아니다. 어떻게 유권자의 신뢰를 받을 것인가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대선, 지선, 총선 전부 압승해놓고도 승자의 저주에 걸려 심판받은 민주당 입장에서 ‘선거는 이기고 봐야 한다’는 말은 반쪽짜리 답이다. ‘이겨서 무엇을 할 것인가’로 나머지 반을 채워야 하는 것이다.    어느 제도가 옳고, 어느 제도는 틀렸단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제도는 다 장단이 있다. 그렇지만 각각의 정치적 ‘주체’들이 책임 있는 정치를 하지 않거나 본인이 속한 정당을 책임 있는 정당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도외시하는데도, 정치가 멀쩡히 굴러가게 만들어주는 ‘제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거제 개혁에 진심으로 활동한 후배 정치인으로서 여쭙는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정치하는 건 정말로 제도 때문인가? 제도만 바꾸면 우리가 다 멀쩡해지는가?    하헌기 더불어민주당 전 상근부대변인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3.12.29 14:00

  • 어르신들 키오스크 공포증…이런 일 없게 할 '5분 묘책' 있다[박한슬이 소리내다]

    식당ㆍ카페 등 키오스크를 활용한 주문과 결제가 늘어나면서 고령자들이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노인분들이 식당이나 카페 같은 곳에서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갈등의 원흉 중 하나가 키오스크(Kiosk)다. 노인이 이를 제대로 쓸 줄 몰라 직원들과 주문과 결제 방식을 두고 다툰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연말을 맞아 커피나 한잔하려다 현금 없는 매장에서 키오스크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된 당혹감과 모멸감이 얼마나 클까.   노인들의 키오스크 접근성 문제가 지적된 지도 이미 몇 해를 넘겼다. 디지털 기기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일컫는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개념도 소개됐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노인들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교육하는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키오스크가 늘어나는 속도는 노인이 사용법을 배우는 속도보다 빠르다. 더구나 매장마다 키오스크 화면도 천차만별이라 특정 매장을 기준으로 배운 키오스크 사용법은 다른 곳에선 무용지물이 되기에 십상이다. 그런데 이 모든 키오스크 사용법을 언제 다 배우나.    ━  급격한 확산에 이용 방식 갖가지   한편으로는 노인들에게 이런 짐을 떠넘기는 것도 황당한 일이다. 인건비 증가에 구인난까지 겹치자 ‘차라리 사람 대신 기계를 들이자’라고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자영업자들의 마음을 모를 수는 없다. 그런데 비용 절감과 이득은 모두 가게가 누리는 상황에서, 소비자가 아둔하여 기계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식의 주장이 버젓이 이루어지는 게 타당한가? 새로운 기술도입의 책임을 소비자가 몽땅 짊어지는 요즈음이 이상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키오스크 허가제를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복잡한 인허가 과정을 거치며 폰트 크기 하나까지 제약하는 촘촘하고 까다로운 규제를 도입하자는 게 아니다. 그런 옛 방식의 규제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규제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안전 문제로 훨씬 복잡하게 고도화됐지만,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의약품 임상시험은 명쾌한 원칙 하나만 충족하면 약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간략히 설명하면 이런 식이다. 내가 새로운 진통제를 개발했다고 하면, 환자 100명을 모아다가 절반한테는 가짜 약을 먹이고 나머지 절반한테는 내가 개발한 진통제를 먹인다. 그리고 두 집단에서 통증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비교해보면, 새 진통제의 약효가 확인된다는 식이다. 실제로 20세기 초반부터 진통제로 꾸준히 사용된 아스피린 같은 약의 작용 원리가 명확히 밝혀진 건 약 사용으로부터 70년이 지난 1970년대다.     ━  노인도 5분 내 주문할 수 있어야    작용 원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실제로 효과만 있으면 허가해주던 시절이라 그런 게 가능했다. 이런 방식을 키오스크 허가에도 접목하면 어떨까. 키오스크에 폰트 크기를 얼마로 정해야 한다느니, 노인용 버튼을 만들라느니, 음성 안내를 추가하라느니 하는 것은 다 집어 치워버리고, 딱 하나만 확인하면 되기 때문이다. 무작위 노인 100명 정도를 불러다, 이들이 해당 키오스크를 이용해 5분 안에 원하는 메뉴를 주문할 수 있을 때만 허가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규제 체계에서는 생소한 개념이겠지만, 실제로 도입되고 시행된다면 기존의 일괄적인 규제 방식보다 훨씬 더 장점이 많다.   첫 번째는 규제의 복잡성이 적다는 점이다. 정부에서 허가 등을 규제하는 경우, 규정집은 해를 거듭할수록 계속 두꺼워지기 마련이다. 누군가 규제를 우회하는 편법을 쓰면 그 편법을 막는 규정을 새로 신설해야 하고, 어떤 경우엔 규제 권력 강화를 위해 관료조직이 불필요한 절차를 더 만드는 경우까지 있다. 그런데 최종 사용자인 노인 100명을 불러다 실제로 기기를 사용케 하는 방식은 규제가 더 복잡해질 여지가 적다. 어디서, 어떤 노인을 데려올지 정도만 규정하면 바뀔 부분이 크게 없기 때문이다. 그 정도 감독으로도 충분한데 세세한 규제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두 번째는 사용자의 편의가 실제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방식의 규제를 시행한다면, 정부 당국자들 혹은 자문한 교수들이 생각하기에 ‘노인이 키오스크를 이용하기 편한 방식’을 규정집에 밀어 넣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런 조치들이 정말로 노인들의 키오스크 이용 편의성을 높일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반면에 실제로 노인 100명을 불러다 기기 사용 경험을 확인하는 건 우회로 없이 명확하게 사용 편의성을 반영하게 된다. 당사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이 대신 짐작해서 정해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  규정 대신 사용 편의성만 심사    마지막으로 이런 규제가 도입되어야만 자율적인 경쟁이 가능하다. 정부가 정한 천편일률적인 규정을 따르는 식이면 모든 키오스크 사업자들이 동일한 형태의 키오스크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종적인 노인의 사용 경험만을 고려하면, 그 안에서 무한한 자율성이 생긴다. 누구는 대표 메뉴 몇 가지를 첫 화면에 꺼내놓을 수도 있고, 다른 이는 한 화면에 노출되는 버튼 개수를 줄이기도 할 것이다. 정답 없는 문제에서 치열하게 노인들의 사용성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기업 창의성을 말살하는 규제라는 비난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시대적 위기를 맞이하여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의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저출산 해결도 중요한 문제는 맞지만, 공회전을 거듭하는 저출산 대책보다 더 현실적인 질문은 늘어난 노인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우할 셈이냐는 것이다. 돌봄과 의료의 위기 같은 무거운 문제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가벼운 키오스크 문제라도 해결하려 노력하는 게 순리다.    박한슬 약사 출신 작가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3.12.27 00:10

  • 애들 보고싶어, 1인 러닝머신 시위…"왜 헤이그협약 안 지키나" [존 시치가 소리내다]

    미국인 존 시치는 두 아이에 대한 친권 소송에서 승소했는데도 대법원 예규 때문에 친모로부터 아이들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을 호소하고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두 명의 아이를 둔 미국인 아빠인 저는 2022년 10월부터 서울에서 러닝머신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여러 소송을 했고, 모든 재판에서 이겼지만 제 아이들을 돌려받지 못한 답답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부모 중 한 명이 다른 나라로 아이를 탈취해 가면 1년 이내에 본국으로 아동을 반환하라는 것이 헤이그 아동반환협약(이하 헤이그협약)입니다. 미국 국무부는 2022년과 2023년 연속 대한민국을 헤이그협약 미이행국가로 등재하였습니다. 아동반환판결을 받아도 집행현장에서 아이가 싫다고 하면 데려갈 수 없도록 규정한 대법원 예규 때문입니다.    ━  올해도 한국은 헤이그협약 미이행국가    12월 7일 대법원이 ‘헤이그협약에 따른 아동반환청구사건의 집행에 관한 예규안’을 공고했습니다(2024년 4월 1일 시행 예정). 헤이그 협약에 따른 아동반환집행에서 ‘아동 의사에 반하여 집행할 수 없다’는 기존 대법원 예규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 점은 다행이지만, 여전히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결함을 안고 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의 유일한 친권자이지만 만나서 안아주는 것도, 생일 축하를 하는 것도 엄마 허락을 받아야만 합니다. 법원에서 “아이들을 돌려주라”는 판결이 확정되었고, 아이들을 돌려줄 때까지 하루 50만원씩 배상하라고 했지만 자기 이름의 재산이 없는 엄마에게 아무런 제재가 되지 못합니다. 아이 엄마는 아이들을 돌려주지 않아 30일 동안 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엄마가 구치소에 수감된 날 아이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돌려받기 위해 경찰에 연락했습니다. 경찰은 아이들 위치를 저에게 알려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모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법을 따른 저를 돕지 않고 판사의 명령을 위반한 엄마 쪽 의사를 더 존중했습니다.   러닝머신 시위하는 미국 아빠 존 시치(본명 시치 잔 빈센트)가 지난 4월 19일 오전 경기남부경찰청 앞에서 아이들을 되돌려달라며 무동력 러닝머신을 걷고 있다. 손성배 기자 서울가정법원 결정으로 지난 7월에 약 3시간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엄마는 아이들이 아빠를 두려워한다고 말했는데, 엄마가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은 저와 웃고 달리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엄마 요청으로 즐겁게 노는 아이들 모습을 사진, 동영상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후 한 번 더 예정된 면접교섭은 하지 못했습니다. 저랑 웃고 뛰어놀았던 아이들이 2차 면접교섭 날 저를 만나기도 전에 “아빠 무섭다, 아빠 만나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인 제가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법이 바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꼭 목소리 내고 싶습니다. 부모 따돌림으로 고통받는 대한민국 부모들과 함께 내는 목소리입니다.    ━  재판 이겼는데 집행 막는 대법원 예규    유아 인도재판을 할 때 판사는 어느 부모가 양육권자로 더 적절한지, 양육환경은 어떤지 종합적으로 조사하여 한쪽 부모를 양육권자로 정합니다. 재판하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판에 지고도 이기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유아 인도 집행에 적용되는 기존 대법원 예규를 활용하면 됩니다.   대법원 예규는 패소한 부모에게 대법원 확정판결보다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그 무기를 사용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상대방 부모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아빠가 너희를 버렸다, 너희가 가면 엄마가 슬퍼서 살 수 없다.” 등의 이야기를 반복해주면 됩니다. 아이들은 그런 상황에서 ‘내가 뭐라고 말하고 행동해야 할까?’ 를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집행관은 현장에 가서 딱 한 마디 묻습니다. “엄마랑 살고 싶어, 아빠랑 살고 싶어?” 집행관이 대법관보다 강력한 권한을 갖는 것이 맞는지 의문입니다.   대법원 전경. 뉴스1 기존 대법원 예규는 일방 부모가 다른 부모를 따돌림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부모 따돌림은 그 자체로 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이고 결국 대법원 예규가 아이들에 대한 정서적 학대의 합법적 도구가 된 것입니다.     이번에 발표된 예규안은 헤이그협약 사건에 한정해서 적용됩니다. 그러나 집행 현장에서 아동에게 부모를 선택하도록 질문하지 않는 것은 헤이그 사건뿐 아니라, 부모 따돌림으로 자녀를 만나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법원 예규안은 아동 반환 집행 시 아동심리 등을 전공한 집행보조자가 참석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아동과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전문가가 불과 몇 시간 안에 세뇌된 아동 마음을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참고로 헤이그협약 지침은 아동 보호를 위하여 아동심리 전문가가 사건 초기부터 반환 완료 시까지 사건 전반에 참여할 것을 권장합니다.    ━  아동심리 전문가가 사건 초기부터 참여해야    ‘집행관은 아동에 대하여 강제력을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 예규안 제4조 4항이 가장 충격적입니다. 제 사건에서 법원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100m 이내로 접근하지 말고 아빠가 아이들을 보호하라는 임시보호명령을 내렸습니다. 경찰과 함께 유치원을 방문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아이들이 울면서 아빠가 무섭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없는 상태에서 저랑 웃고 떠들던 아이들이었는데 다시 저를 보고 울면서 무섭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경찰은 “아이들이 가지 않겠다고 하는데 안아서 데려가는 것도 강제력이다”라면서 우는 아이를 안아서 데려가면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고 하였습니다.   가지 않겠다고 우는 아이를 안는 것이 강제력이고, 그 강제력을 사용할 수 없다면 새로 발표된 예규안은 집행현장에서 어떤 효력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강제력’이라는 애매한 단어는 대한민국 공권력이 유아인도 집행현장에서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애매한 상황과 닮았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러닝머신을 뛰던 날 한 젊은 군인이 다가와, 자신은 부모의 이혼으로 부모 중 한 명과 떨어져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다른 부모님을 간절히 만나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위하여 한국에 온 이래 저는 외국 부모의 아이들뿐 아니라, 많은 한국 부모와 아이들이 부모 따돌림으로 고통받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가가 아이들의 권리, 특히 진정으로 두 부모를 알고 사랑할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소중함을 외치는 정부의 어떠한 정책과 발언도 위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1인 시위를 통해 한국 정부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지만 다른 한편 새로운 예규를 만들어 저처럼 고통 받는 사람들의 간절한 부탁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한국 정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대법원 예규안은 제도 개선의 첫걸음이겠지만 여전히 많은 개선이 필요하며, 법무부와 국회도 제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국가가 자신이 가진 공권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하여 아이들이 부모 모두로부터 사랑받고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존 시치(John Sichi) 미국인·전 소프트웨어 개발자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소리내다〉는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소통 공간입니다. 윗글에 대한 다른 목소리도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think@joongang.co.kr         

    2023.12.22 16:00